2025
자비의 계획
2025년 5월호


11:6

자비의 계획

주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은 참으로 자비의 계획입니다.

선지자의 권유

교회에서 커틀랜드 성전을 취득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작년 4월에,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교리와 성약 109편에 기록된 커틀랜드 성전 헌납 기도문을 공부하도록 권유하셨습니다. 이 헌납 기도문은 “여러분과 제가 이 마지막 날에 삶의 역경들에 맞설 수 있도록 성전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적으로 힘을 주는지를 알려 주는 지침서”라고 넬슨 회장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109편을 공부하면서 얻은 통찰은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저는 선지자의 권유를 따르며 배운 것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이것을 공부하면서 평안을 얻었고, 이를 통해 주님께서 자비로우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은 참으로 자비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새로 부름받은 선교사

아시다시피, “새로 부름받은 선교사들은 가능한 한 빨리 성전 엔다우먼트를 받고 상황이 허락하는 한 자주 성전에 참석하도록 권장”됩니다. 또한 엔다우먼트를 받고 나면 “선교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성전 … 봉사자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선교사들이 선교사 훈련원(MTC)에 입소하기 전에 성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성전 성약의 축복을 세상에 전하기에 앞서 그 성약에 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 훌륭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109편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은 성전에서 새로운 선교사와 우리 모두에게 그 밖의 성스러운 방식으로 능력을 주신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계시로 주어진 이 헌납 기도문에서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당신의 집에서 나갈 때” “땅의 … 위인들”과 “모든 가난한 자, 궁핍한 자, 고난 받는 자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게 하시고, 진리 앞에서 그들의 편견이 사라지게 하시며, 당신의 백성이 모든 사람의 눈에 호의를 얻게 하시고, 모든 땅 끝이, 당신의 종들인 우리가 당신의 음성을 들었고 또 당신께서 우리를 보내셨음을 알게 하시[옵소서.]”

새로 부름받은 선교사에게 주어진 이 훌륭한 약속은 바로 “진리 앞에서 [편견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의 눈에 호의를 얻”으며,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셨음을 세상이 알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분명 우리 각자에게는 이러한 축복이 필요합니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이웃과 동료들을 대하는 것은 큰 축복일 것입니다. 헌납 기도문에는 우리가 성전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주님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자비에 집중함으로써 우리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자비를 간청하는 조셉 스미스에게 응답하심

커틀랜드 성전 헌납 기도문을 공부하면서, 저는 또한 조셉이 교회의 회원들과, 교회의 적들, 나라의 통치자들, 땅의 모든 나라에 대한 자비를 거듭 간청한 사실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개인적으로 주님께서 자신을 기억하시고 사랑하는 에머와 자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일주일 후인 1836년 4월 3일 부활절에, 구주께서는 커틀랜드 성전에서 조셉과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교리와 성약 110편에 기록된 대로 “내가 이 집을 받아들였고 내 이름이 여기에 있을 것이며, 내가 이 집에서 자비 가운데 나의 백성에게 나 자신을 나타낼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조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자비에 대한 이 약속은 분명 조셉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넬슨 회장님께서 지난 4월에 가르치신 대로, 이 약속은 “오늘날 헌납된 모든 성전에 적용됩니다.”

주님의 집에서 자비를 찾음

우리 각자가 주님의 집에서 자비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고 그 중심에 “속죄소”를 두라고 처음 명하신 이래로 계속 그러했습니다. 성전에서 우리는 우리가 맺는 성약을 통해 자비를 발견합니다. 침례 성약에 더하여 성전 성약은 우리를 하늘 아버지와 그 아들께 결속해 주고, 넬슨 회장님께서 가르치신, 히브리어로 헤세드라 하는 “특별한 종류의 사랑과 자비”를 더 풍성히 누리도록 해 줍니다.

우리는 가족에게 영원히 인봉되는 기회에서 자비를 발견합니다. 또한 성전에서 우리는 창조와 타락, 구주의 속죄 희생,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능력, 다시 말해 구원의 계획의 모든 부분이 자비를 나타낸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이해하게 됩니다. 구원의 계획이 행복의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자비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마음은 성신에게 문을 열어 줌

저는 110편에 나오는 놀라운 약속, 즉 주님께서 성전에서 자비롭게 당신을 나타내시리라고 하신 약속에 감사합니다. 또한 조셉처럼 우리도 언제든지 자비를 간청하면 주님께서 자비롭게 당신을 나타내실 것임을 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조셉 스미스가 자비를 간청했을 때 계시가 주어진 경험이 109편에 실려 있는데 그것이 최초의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소년 조셉이 성스러운 숲에서 기도했던 것은 단지 어느 교회가 참된지 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께 간절히 자비를 구했다. 내가 찾아가 자비를 구할 분은 그분뿐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가 주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비로소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3년 후에 조셉은 “나의 모든 허물과 어리석음을 사해 주[시도록] … 전능하신 하나님께 … 기도하며 간구”하자 모로나이 천사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자비를 간청할 때 계시를 받는 이러한 방식은 경전에서 흔히 찾을 수 있습니다. 이노스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했을 때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개심을 하기 시작한 라모나이 왕의 부친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당신을 알[기] … 위하여, 나의 모든 죄를 버리겠나이다.” 우리가 이같이 극적인 경험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따금 기도에 대한 응답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 성신의 증거를 느끼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깊이 생각하면 몰몬경에 대한 간증의 문이 열림

이와 유사한 원리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이 모로나이서 10장 3~5절에 나옵니다. 진지한 기도를 통해 몰몬경이 참된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이 구절을 간략히 언급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비의 중요한 역할을 간과할 수 있습니다. 모로나이가 어떻게 권유를 시작하는지 들어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권면하거니와, … 너희가 이 기록을 읽게 되거든, 너희는 아담이 창조된 때로부터 너희가 이 기록을 받게 될 때까지 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에게 얼마나 자비로우셨던가를 기억하고, 그것을 너희 마음에 깊이 생각하라.”

모로나이는 우리에게 자신이 봉할 그 기록을 읽는 데에만 그치지 말고, “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에게 얼마나 자비로우셨던가”에 관해 몰몬경의 가르침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해 보라고 촉구합니다. 주님의 자비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혹 이 기록이 참되지 아니한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몰몬경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계획에 따라 이 지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부활하고 모든 것이 그 완전한 구조로 회복된다는 앨마의 가르침이 사실일까? 앰율레크의 말처럼, 구주의 자비가 없다면 우리가 치러야 할 공의의 모든 실질적인 요구를 자비가 충족해 주고, “[우리를] 안전한 팔 안에 감싸” 줄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연약함을 좇아 어떻게 도울지 아시고자”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통과 고난”을 위해 고통을 겪으셨다는 앨마의 간증이 사실일까? 베냐민 왕이 가르친 것처럼 주님은 너무나도 자비로우셔서, “그들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죽은 자들, 또는 무지한 가운데 죄를 범한 자들의 죄를 위하여” 대가 없이 속죄하셨을까?

리하이의 말대로, “아담이 타락한 것은 사람이 존재하게 하려 함이요, 사람이 존재함은 기쁨을 갖기 위함”일까? 아빈아다이가 이사야의 말을 빌려 간증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상처를 입은 것은 우리의 범법으로 인함이[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며,]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임하였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이 정말일까?

요컨대, 몰몬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계획은 정말로 이렇게 자비로운 것일까? 저는 그것이 참되며, 자비에 관해 평안과 희망을 주는 몰몬경의 가르침이 참됨을 간증드립니다.

그렇지만, 충실히 몰몬경을 읽고 기도하는데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신의 권능으로 너희에게 이것의 참됨을 드러내어 주시리라”는 모로나이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민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고민을 잘 압니다. 수년 전 몰몬경을 처음 두 차례 읽었을 때, 저도 기도에 대한 즉각적이고 명확한 응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모로나이의 권고대로 몰몬경에서 “주께서 사람의 자녀들에게 얼마나 자비로우셨던가를” 설명하는 여러 방식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저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분이 그렇게 하실 때 마음에 성신의 평안을 느끼고, 몰몬경과 그 책에서 가르치는 자비의 계획이 참됨을 알고, 믿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위대한 자비의 계획과 그 계획을 기꺼이 실행하신 구주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우리가 그분을 찾는다면, 거룩한 성전에서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그분께서 자비롭게 당신을 나타내 보이실 것임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러셀 엠 넬슨, “신권 열쇠의 은사에 기뻐하십시오”, 『리아호나』, 2024년 5월호, 121쪽 참조.

  2. 러셀 엠 넬슨, “신권 열쇠의 은사에 기뻐하십시오”, 121쪽.

  3. 『일반 지침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봉사함』, 24.5.1, 복음 자료실.

  4. 모든 성전 축복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러한 축복은 우리가 성전에서 맺는 성약을 지킬 때 받을 수 있다. 러셀 엠 넬슨, “세상을 이기고 쉼을 얻으십시오”, 『리아호나』, 2022년 11월호, 96쪽 참조: “성전에서 성약을 맺고 그것을 지키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또 하나의 예로, 성전 가먼트 착용에 대한 제일회장단의 다음 지침을 고려해 본다. “예비 의식에서 지시받은 대로 가먼트를 입는 성스러운 특권을 포함하여 여러분이 맺은 성약을 지킬 때, 구주께서 주시는 자비와 보호와 힘과 권능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일반 지침서』, 26.3.3.2, 복음 자료실; 강조체 추가)

  5. 교리와 성약 109:55~57.

  6. 러셀 엠 넬슨,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리아호나』, 2024년 11월호, 121~122쪽 참조.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성전에서 그분을 찾을 것입니다. 그분의 자비를 느낄 것입니다.”

  7. 교리와 성약 109:23 참조: “이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오니 당신 백성의 범법을 용서하시고, 영원히 지워 없애 주시옵소서.”

  8. 교리와 성약 109:50 참조.

  9. 교리와 성약 109:54 참조. 또한 조셉은 주님께 이렇게 간구했다. “야곱의 자녀들에게 자비를 베푸사, 이 시각부터 예루살렘이 구속을 얻기 시작하게 하시고, 속박의 멍에가 다윗의 집에서 꺾어져 벗어지기 시작하게 하시며, 유다의 자녀들이 당신께서 그들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땅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게 하시옵소서.”(교리와 성약 109:62~64)

  10. 교리와 성약 109:68 참조.

  11. 교리와 성약 109:69 참조. Oxford English Dictionary에는 자비가 “무력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보이는 관용과 연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mercy,” oed.com). 자비는 은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과 친절, 즉 그분의 헤세드의 표현이다. 자비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면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은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더라도 공덕과 상관없이 축복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12. 교리와 성약 110:7.

  13. 개별적인 자비의 표현으로, 조셉과 올리버는 다음 말씀을 들었다. “보라, 너희 죄는 사함 받았으니, 너희는 내 앞에서 깨끗하도다. 그러므로 너희 머리를 들고 기뻐하라.”(교리와 성약 110:5)

  14. 러셀 엠 넬슨, “신권 열쇠의 은사에 기뻐하십시오”, 121쪽.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이 약속이 여러분께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15. Bible Dictionary, “Tabernacle” 참조: “지성소에는 단 하나의 물품, 즉 언약궤만 있었다. … 궤와 덮개 위에는 속죄소가 있었다. 그것은 아래에 있는 궤와 함께 유대교 율법에 알려진 가장 높은 속죄가 이루어지는 제단 역할을 했다. 속죄일에는 그 위에 속죄물의 피를 뿌렸다.(레위기 16:14~15) 속죄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이었다.(출애굽기 25:22)”

  16. 러셀 엠 넬슨, “영원한 성약”, 『리아호나』, 2022년 10월호, 5쪽. 넬슨 회장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영어에는 헤세드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으며, 구약전서에서 헤세드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번역어는 자비이다. 흠정역 성경의 구약전서에는 헤세드라는 단어가 248회 등장하지만, 이에 대한 번역으로 자비[mercy]가 149회, 친절[kindness]이 40회, 자애[lovingkindness]가 30회 사용되었다.(Blue Letter Bible, blueletterbible.org/lexicon/h2617/kjv/wlc/0-1/ 참조)

  17. 『일반 지침서』, 27.2 참조. 구주께서는 당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가르치신다.(요한복음 14:6 참조) 교리와 성약에는 우리에게 자비를 내려 주시도록 간청하는 구주의 간절한 기도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아버지께 대한 변호자가 되는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는 아버지 앞에 너희 문제를 변호하고 있나니—

    아뢰기를,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자요 아무 죄도 범하지 아니한 자가 겪은 고난과 죽음을 보시옵소서. 당신 아들의 흘린 피를 보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친히 영광을 얻으시려고 주신 자의 피로소이다.

    그러하온즉 아버지여, 나의 이름을 믿는 이 나의 형제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내게 나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옵소서.”(교리와 성약 45:3~5)

  18. 제프리 알 홀런드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심을 가장 좋아하시는 순간은 자비를 베풀 때, 그것도 자비를 기대하지 않거나 종종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하실 때[입]니다.”(“포도원의 품꾼”, 『리아호나』, 2012년 5월호, 32~33쪽) 또한 교리와 성약 128:19 참조: “이제 우리가 받은 복음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듣느냐? 기쁨의 소리! 하늘에서 온 자비의 소리요, 땅에서 솟아난 진리의 소리요, 죽은 자를 위한 좋은 소식이요,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기쁨의 소리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니라.”

  19. 앨마서 42:15. 자비는 언제나 구원의 계획의 정수였다. 그리스도의 성역에 관한 다음 세 가지 경전 구절이 이를 설명해 준다. 니파이는 몰몬경의 첫 장을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보라, 나 니파이는 주의 친절하신 자비가 그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가 택하신 자 모두의 위에 있어 그들을 능하게 하여, 참으로 구원의 능력에 이르게 하였음을 너희에게 보여 주리라.”(니파이전서 1:20)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이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신다. 어떤 이들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구약전서의 다른 어떤 구절보다도 이 구절을 더 많이 언급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Bible Project, “The Most Quoted Verse in the Bible,” bibleproject.com/podcast/most-quoted-verse-bible/ 참조.)

    신약전서의 누가복음에서, 천사는 노년의 엘리사벳이 장래에 침례 요한이 될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이를 의심한 사가랴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했다는 점을 기억한다.(누가복음 1:20) 사가랴는 마침내 말문이 열리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그는 메시야의 시간이 마침내 도래했음을 처음으로 공개 선언하면서, 주님께서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려 오시]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고 “예언”했다.(누가복음 1:67~73; 강조체 추가)

  20. 복음 주제 관련 글, “첫번째 시현 기록”, 복음 자료실, 특히 1832년 기록 참조.

  21. 조셉 스미스—역사 1:29. 교리와 성약 20편 5~6절에는 두 차례의 강력한 시현에서 회개의 역할이 설명되어 있다. 조셉은 자신이 “어떠한 큰 죄나 사악한 죄를 범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으나, “[자신]의 약점과 불완전함으로 인해 정죄받는 느낌을 가졌”으며 용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조셉 스미스—역사 1:28, 29)

  22. 이노스서 1:1~8 참조.

  23. 앨마서 22:18. 앨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 나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린 결과로, 엄청난 빛을 보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앨마서 36:17~20 참조) 제프리 알 홀런드 회장님은 앨마의 이 간청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런 기도는 비록 짧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심장한 기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리든, 우리에게 어떤 것들이 필요하든,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 나를 긍휼히 여기시옵소서’라는 그 간청으로 귀결됩니다.”(Our Day Star Rising: Exploring the New Testament with Jeffrey R. Holland [2022], 170–71)

  24. 카일 에스 맥케이 장로님은 다음과 같은 훌륭한 가르침을 전하셨다. “자주 회개한 조셉의 삶에서 저 또한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여호와와 대화한 사람”, 『리아호나』, 2024년 11월호, 61쪽)

  25. 모로나이서 10:3.

  26. 모로나이의 간청과 몰몬경의 첫 부분에 기록된 니파이의 말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니파이는 판에 기록하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보라, 나 니파이는 주의 친절하신 자비가 그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가 택하신 자 모두의 위에 있어 그들을 능하게 하여, 참으로 구원의 능력에 이르게 하였음을 너희에게 보여 주리라.”(니파이전서 1:20)

  27. 모로나이서 10:4.

  28. 몰몬서 9:13 참조.

  29. 앨마서 40:23: “영혼은 육신에게로 회복되겠고, 또 육신은 영혼에게로 회복될 것이라. 또한 각 사지와 관절이 그 몸으로 회복되리니, 참으로 머리털 하나라도 잃지 아니하고, 모든 것이 그 적절하고도 완전한 구조로 회복되리라.”

  30. 앨마서 34:16. 주님께서 이제껏 얼마나 자비로우셨는지를 생각해 볼 때, 자비를 공의로부터 분리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즉,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애정 깊은 자비만으로 공의를 이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앨마는 이렇게 가르쳤다. “속죄가 행하여지지 않고서는 자비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지라, 그러므로 자비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세상의 죄를 위하여 속죄하시나니, 이는 하나님이 완전하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자, 또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고자 함이라.”(앨마서 42:15; 강조체 추가)

    우리를 향한 구주의 자비로운 사랑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그분께서 매우 실제적이고 고통스러운 공의의 요구를 겪으신 덕분이었다. 물론 이것이 그분께서 지니신 사랑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분명, 그분께서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신 이유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과, 그리고 역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당신의 소망에 있다.(요한복음 3:16; 교리와 성약 34:3 참조) 그러나 사랑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즉 불가피하게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육에 속한 사람으로서 공의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공의의 요구를 없애는 것으로 오해한다면, 그분의 속죄 희생이라는 선물과 공의의 엄청난 대가를 치르기 위해 그분께서 겪으신 고통을 경시하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을 속죄 희생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요소로 이해한다면 실망스러운 역설이 될 것이다. 공의의 완전한 요구를 똑바로 보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그 실제적인 요구를 감당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일이다.

  31. 앨마서 7:11~12.

  32. 모사이야서 3:11.

  33. 니파이후서 2:25.

  34. 모사이야서 14:5.

  35. 모로나이서 10:4.

  36. 모로나이서 10:3.

  37. 엠 러셀 밸라드 회장님은 우리에게 “여러분이 알고, 믿고, 느끼는 것”에 대해 간증하라고 격려하셨다.(“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십시오”, 『리아호나』, 2023년 5월호, 107쪽)

  38. 이 제언에서, 몰몬경이나 복음의 참됨에 대한 간증을 대체하는 “공식”을 제의하려는 의도는 없다.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계시는 “어두운 방에 불이 켜진 것”처럼 “빠르게, 온전히, 단번에” 받을 수 있다. 또한 그것은 “태양이 떠오르면서 그 빛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처럼 “말씀에 말씀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받을 수도 있다.(니파이후서 28:30)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는 그러한 계시는 점차로, 그리고 부드럽게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같이 [우리의] 영혼을 적[신다].’(교리와 성약 121:45) 이러한 방식으로 계시를 받는 것이 더 일반적인 일[이]다.”(“계시의 영”, 『리아호나』, 2011년 5월호, 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