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대회
너희가 일컬음을 받을 그 이름
2025년 10월 연차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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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일컬음을 받을 그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넬슨 회장님께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면 하나님의 자녀이자 성약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에 관해 가장 먼저 이해하게 하실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모든 이름은 결국은 실망을 가져올 것입니다.

제 큰아들에게 처음 핸드폰이 생겼을 때, 저는 그 사실을 배웠습니다. 아들은 신이 나서 연락처에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을 입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아들의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까 아이 엄마가 건 전화였습니다. 화면에는 “어머니”라고 떴습니다. 분별 있고 품위 있는 선택이었고, 솔직히 가정의 더 훌륭한 부모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무슨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내가 “어머니”니까 저는 “아버지”일 거라는 추측을 하며, 저는 연락처를 훑어봤습니다.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빠”를 찾아봤더니 여전히 없었습니다. 호기심은 약간의 걱정으로 변했습니다. 혹시 제 이름인 “코리”로 저장했나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축구를 좋아하니까 “펠레”라고 저장했나 싶었지만, 헛된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아들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고, 그러자 두 단어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어머니 아님”이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께서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계십니까?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아들과 딸, 선지자들의 자손, 양, 친구, 세상의 빛, 성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각 이름은 영원한 중요성을 지니며, 구주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한 이름은 가장 중요한데,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몰몬경에서 베냐민 왕은 다음과 같은 강력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구원이 오는 다른 이름이 주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 너희 모두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기를 바라노라. …

또 이렇게 되리니 누구든지 이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게 될 것이라. 이는 그가 어떤 이름으로 자기가 불리우는지 알 것임이니,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리울 것임이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드는 이들은 그분의 제자이자 증인이 됩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증인들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침례를 받으며 성신을 받은 이들이라면 죄 사함을 받을 것임을 가르치도록 명 받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거룩한 의식을 받은 사람들은 함께 교회에 모여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어졌습니다. 몰몬경에도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이들, 그리고 하나님과 성약을 맺고 “그리스도의 자녀라, 그의 아들과 그의 딸이라” 일컬음을 받은 이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약을 맺고 지키며, 항상 그를 기억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기꺼이 … 어느 때에나 무슨 일에나, … 하나님의 증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교리와 성약, 의식을 포함한 메시지를 전할 때 그들을 지지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고, 빛이 되며,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는 일생 동안 계속해서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어떤 사람도 순식간에 이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제자로서의 여정은 “말씀에 말씀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는 노력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이름에 눈을 돌리기 쉽습니다. 그런 이름은 일시적인 가치만을 지니며, 그 자체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구속과 영원한 것들은 오직 “거룩하신 메시야 안에서 거룩하신 메시야를 통하여 임”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시선을 끌려는 목소리와 영향력이 특히나 넘쳐나는 이 시기에 제자의 길을 최우선 순위로 삼으라는 선지자의 권고는 시의적절하고도 현명합니다. 이는 베냐민 왕의 다음 권고의 핵심이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항상 너희 마음에 기록하여 간직할 것을 기억하여, … 너희를 부를 음성과 또한 그가 너희를 부르실 그 이름을 너희가 듣고 알기를 바라노라.”

마틴 게스너

저는 이것을 제 가족에게서도 보았습니다. 제 증조부이신 마틴 게스너는 어떤 겸손한 지부 회장님께서 구주의 부름에 응하셨기에 영원히 변했습니다. 1909년, 독일은 어려운 시기였고, 돈은 궁했습니다. 마틴 할아버지는 파이프 공장의 용접공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스스로 인정하셨듯이, 대부분의 월급날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동네 술집에서 친구들에게 술을 사 주는 것으로 끝나곤 했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변하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술집에 가던 할아버지는 구겨진 종교 팸플릿을 들고 있는 동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동료는 길에서 독일어로 몰몬에 관해 아시나요?[Was wissen Sie von den Mormonen?}라고 적힌 팸플릿을 주웠다고 할아버지에게 말하며 그걸 읽고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제는 제목이 바뀌었을 겁니다.

소책자 뒤에는 교회 주소 도장이 찍혀 있었는데,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교회는 꽤 멀리 있었지만, 그럼에도 책자를 읽고 뭔가를 느꼈던 그분들은 그 주 일요일에 기차를 타고 교회를 알아보러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분들은 그 주소가 기대했던 교회가 아니라 장례식장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진행되는 교회는 좀 아니다 싶었던 할아버지는 들어가기를 주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위층의 한 임대한 홀에서 소규모의 성도들을 찾았으며, 그 중 어떤 형제님이 할아버지와 친구분을 간증 모임에 초대했습니다. 마틴 할아버지는 영을 느꼈고, 그곳에서 들은 강력하고도 단순한 간증에 감동해 자신도 간증을 나눴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예상 밖인 그 장소에서, 할아버지는 벌써 교회가 참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모임을 마친 후, 두 사람을 간증 모임에 초대한 형제님이 자신을 지부 회장이라고 소개하며 할아버지와 동료에게 교회에 다시 올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자신이 너무 멀리 살아서 매주 교통비를 내긴 힘들다고 설명하자, 지부 회장님은 그저 “저를 따라와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지부 회장님의 친구가 일하는 근처 공장으로 몇 블럭 걸어갔습니다. 지부 회장님은 그들을 소개하고 잠시 대화를 나눴으며, 할아버지와 친구분은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런 다음 지부 회장님은 어떤 아파트로 가서 가족들이 살 장소를 얻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두 시간 내에 일어났습니다. 마틴 할아버지 가족은 그다음 주에 이사했고, 6개월 후에는 모두 침례를 받았습니다. 한때 아무 희망도 없던 술고래는 자신의 새로운 믿음에 열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좋은 어감은 아닐지 몰라도 그를 “신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찾을 수 없게 된 그 지부 회장님의 이름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분을 제자, 그리스도의 대리인, 그리스도인, 선한 사마리아인, 친구라 부릅니다. 116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분의 영향력은 건재하며, 저는 제자인 그분 덕에 여기 있습니다.

성전을 방문한 게스너 가족

사과 하나 속의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하나에서 자라날 사과는 셀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지부 회장님이 심은 씨앗은 수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당시 그분은 48년 후에 휘장 양편에서 마틴 가족의 수 세대가 스위스 베른 성전에서 인봉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설교는 귀로 들리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두루 선한 일을 하는 평범한 이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조용하고 겸손한 행동일 것입니다. 이 자애로운 지부 회장님은 할 일 목록에 있는 일이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단지 앨마서에 기록된 대로 “주린 자나 목마른 자나 병든 자[를] 아무도 보내어 버리지 아니하였으며, … 늙은 자와 젊은 자 …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후히 나누어 주”며, 단순히 복음대로 생활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들은 “교회 안에 있거나 교회 밖에 있거나 간에” 아무도 보내어 버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드는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축복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 인류에게 축복을 전하기를 갈망”한다는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깁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사실 그분은 그런 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제자들도 모두 기록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선한 일을 하고 제자로서의 삶을 평생 최우선 순위로 삼으며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름으로써, 다른 이들과 소통할 때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확신을 주는 성신의 권능을 느끼도록 해 줍시다. 그러면 우리는 제 증조부와 다른 수백만의 사람들과 더불어, 제자 안드레처럼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선언하게 될 것입니다.

종국에 우리의 정체성은 세상의 기준으로 정의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제자 됨은 우리가 받는 의식으로, 우리가 지키는 성약으로, 선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이웃에게 보이는 사랑으로 정의될 것입니다. 넬슨 회장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자녀이고 성약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며 우리를 구속하셨음을 간증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