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겸손히
성약을 맺고 지킬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주께 결속하며 이를 통해 그분의 자비와 보호, 치유와 안식, 그리고 성결하게 하는 힘을 더 많이 얻게 됩니다.
새로운 찬송가를 통해 간증을 나누어 주신 합창단께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성찬 찬송가 “생명의 떡과 물”은 제 영혼을 채워 줍니다. 이 찬송가에는 “주님 앞에 나아와서 상한 마음 드리며”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2015년, 유타 옥든 선교부에 부름받고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뉴버리파크를 떠난 직후에 저는 이 가사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초대를 받고 유타 레이턴 근교의 힐 공군 기지를 둘러보게 됐을 때였습니다. 그전에 저는 군부대에 가 본 적도, 군종 목사는 물론 나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본 적도 없었습니다.
전 세계 교도소와 병원, 군사 시설에서 보수를 받거나 받지 않고 일하는 수천 분의 여느 목사님들처럼 하프 목사님은 제게 영감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부대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성소였습니다. 저는 목사님에게 숙고하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예배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예배를 여시는지 물었습니다. 그분은 예배당 앞쪽 벽으로 가서 커튼 뒤에서 십자가를 꺼냈습니다. 개신교와 천주교 모임에서 그 십자가를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유대인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는 무엇을 사용하느냐고 묻자, 그분은 벽 다른 쪽으로 가서 다윗의 별을 꺼냈습니다.
저는 다시 질문했습니다. “후기 성도들의 예배 모임에서는 무엇을 하시나요?” 그분은 그 상징물들을 치우고 예배당 중앙 큰 나무 제단을 가리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들은 그 위에서 빵과 물을 준비하고 축복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단이 큰 데다 위치가 고정된 것 같은데 유대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형제 자매들의 모임이 있으면 미리 치우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다른 종교의 예배에서도 다른 용도로 제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그대로 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한 뒤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멈춰졌고, 그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자존자께서, 혹은 그분의 선지자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말로 자원하신 일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산상수훈에서 구주께서는 제단에 나아오기 전에 형제 자매와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제단에서 “거룩함을 얻”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선지자 리하이는 “그의 집과 … 귀한 것들을 버려두고, … 제단을 쌓고 주께 제물을 드리며 …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경과 몰몬경에서는 제단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예배하라고 가르칩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우리의 첫 번째 부모였던 아담과 이브는 제단을 쌓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여러 날” 동안 예배를 드린 후, 천사가 방문하여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가슴을 울리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주께 희생을 드리느냐?”
아담은 “나는 … 알지 못하노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담의 겸손한 고백에 천사는 놀라운 답을 주었습니다. “이[는] … 아버지의 독생자의 희생하실 모형이니라. 그런즉 너는 네가 하는 모든 것을 아들의 이름으로 행할지며, 회개하고 영원토록 아들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를지니라.”
성찬대와 성전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분의 무한한 속죄를 상징합니다.
교회의 성찬 의식과 성전의 엔다우먼트 및 인봉 의식을 통해 성약을 맺고 지킬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주께 결속하며 이를 통해 그분의 자비와 보호, 치유와 안식, 그리고 성결하게 하는 힘을 더 많이 얻게 됩니다.
성약을 통한 자비와 보호
열다섯 살 때, 저는 중요한 미식축구 경기가 보고 싶어서 1월에 딱 한 번만 성찬식에 빠져도 되는지를 아버지께 여쭈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스스로 선택할 나이가 됐다고 하시며 한 가지 조언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성찬식에 한 번 빠지기로 하면 다음부터는 그렇게 선택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단다.”
구주께서는 사람들 사이에 큰 화합을 이루시지만, 대적은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해 성결한 예배 장소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구주께 예배드릴 때, 우리는 “자연스러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권능”을 받습니다. 시간을 들여 그분과 대화할 때, 우리는 “사탄에게[서] … 구원받”으리라는 약속을 얻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성약을 지킬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 강화해 주는 그분의 권능을 내려 주십니다.” 거룩한 제단에서 맺는 성약을 통해 구주와 교통하는 경험은 저에게 참으로 소중합니다.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구주의 영원한 속죄에 관한 이해력을 쌓으면 대적의 계략에 맞서 영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멕시코의 젊은 야기 장로와 벨기에의 야기 자매를 비롯한 전 세계 선교사들은 처음 만난 친구가 바로 그 주에 성찬식에 참석한다면 침례와 성신의 은사의 축복을 얻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통가나 사모아에서는 청년 독신이 학교를 졸업한 직후에 자신의 엔다우먼트를 준비하고 받는 경우, 주님의 집에서 인봉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엔다우먼트에서 교회 회원들은 그들의 삶에 권능과 보호를 불러오는 다섯 가지 율법을 실천하고 따르고 지키도록 권유받습니다. 주님과 성약을 맺으면 상호 관계가 형성됩니다. 우리는 그분께 충실과 사랑을 보여 드립니다. 약속을 맺고 지킬 때마다 힘과 권능이 자라납니다.
돌아보고 성결하게 되어
상징적인 의미에서 겸손하게 주님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면 “[우리] 마음의 교만이 억제를 받아,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반성할 기회가 됩니다. 청소년 시절 제가 친구들과 함께 나가려 할 때면 어머니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돌아오면 어땠는지 말해 주렴.” 어떤 날은 너무 늦게 돌아와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저는 매일 저만의 예배 방식을 따릅니다. 기도하기 위해 자기 전 혼자서나 가족과 함께 무릎 꿇을 때면, 제단에 무릎 꿇는 제 모습을 그리며 삶을 돌아보고 점검합니다. 그리고 성찬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를 위해 떼어지고 찢긴, 구주의 상한 몸을 상징하는 그 모든 조각 조각의 빵을 생각합니다. 빵을 취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듯 빵도 조각마다 모양이 다르다는 댈린 에이치 옥스 회장님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저는 하나님께 제 뜻을 드릴 방법을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성찬 의식은 곧 진실하게 회개하여 영적으로 새롭게 되라는 거룩하고도 반복적인 권유입니다. 성찬을 취하는 행위 그 자체로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심껏 준비하여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이 거룩한 의식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영이 항상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또한 성신의 성결하게 하는 권능을 변하지 않는 동반자로 삼아, 죄 사함을 항상 간직할 수 있습니다.”
아내 에이미와 저는 함께 삶의 경험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과 희생이라는 선물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지옥의 분노가 풀려났던 순간들도 보게 됩니다. 비판적인 시선, 불안장애, 우울증, 암, 당뇨, 사이버 폭력, 개인 정보 유출, 유산, 자녀와 형제와 아버지의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비틀걸음치게 하는 쓴 잔, 그 분노의 잔은 저와 제 가족과 우리 모두를 위해 그 잔을 받드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애덤 에이브럼, altusfineart.com 제공 © 2025
그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쓴잔”을 마시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더욱 심화”된 고통을 겪으셨기에 우리는 어려움과 무례함과 폭력과 분노와 우리를 비틀거리게 하는 것들을 주님의 제단에 올려 두고 “성신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성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패트리샤 홀런드 자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 있고 어떤 일을 했든, 주님께 온전히 뜻을 맡기고 하나님의 약속과 평화의 제단에 우리 자신을 놓아두게 되는 것이 제가 오늘 여러분과 저 자신에게 가장 간절히 바라는 일입니다.”
치유와 휴식의 장소
우리는 상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분에 관해 배우기 위해 제단에 나아갑니다. 그 배움과 성약의 결속에서 치유를 받습니다. 니파이는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사랑으로 나를 채우사 참으로 나의 육체가 소멸되기에 이르게 하셨도다.” 사랑이 많으신 구주께서는 권유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제 내게로 돌아와 너희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내가 너희를 고치게 하지 아니하려느냐?”
제 딸 매켄지와 에마는 어렸을 때 『나니아 연대기: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저희는 모두 사자인 아슬란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사자가 에드먼드를 위해 목숨을 내준 부분을 읽던 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이 생생한 이유는, 마녀에 의해 사자가 돌탁자 위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저희 부부도 딸들도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극이 일어났지만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부활한 아슬란이 이렇게 말했을 때는 그 작은 침실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하얀 마녀가 희생의 참뜻을 알았더라면, 결백한 자가 반역한 자를 대신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면 돌탁자가 깨지고 죽음 그 자체도 힘을 잃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2022년 10월 연차 대회에서 러셀 엠 넬슨 회장님께서는 성전 일반 공개 중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일행 중에는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일행이 엔다우먼트실에 들어가자 소년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성약을 맺기 위해 무릎을 꿇는 제단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멋지네요. 여기가 사람들이 성전 여정에서 쉬는 곳이군요.’
… [소년은] 성전에서 하나님과 성약을 맺는 것이 구주께서 주신 다음의 놀라운 약속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강조체 추가]”
그분께서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성찬이 차려진 탁자로 제자들과 여러분과 저를 초대하셔서 당신과 함께 쉬게 하셨습니다. “무릎 꿇고 겸손히” 제단에 나아오는 영혼들이 있을 때 평화가 가득합니다. 우리 구주께서 두 팔을 펼치셨습니다. 그분의 성찬이 차려졌습니다. 거룩한 제단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아들을 예배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