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대회
서로 응원하십시오
2025년 10월 연차 대회


11:52

서로 응원하십시오

오직 주님께서만 우리 각자의 한계와 능력을 온전히 아시기에, 그분은 우리의 행위를 판단할 온전한 자격을 갖춘 유일한 분이십니다.

최근에 한 글을 읽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 마스터스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1,500m 경주에 출전한 선수 중에는 100세의 오빌 로저스가 있었습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출발 총성이 울리자 주자들이 출발했다. 시작하자마자 오빌은 꼴찌로 자리 잡았고 경기 내내 홀로 매우 천천히 달렸다. 오빌 바로 전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오빌은 아직 두 바퀴 반을 남겨 두고 있었다. 거의 3,000명의 관중이 트랙을 천천히 도는 그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으며, 그는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철저히 홀로 뛰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바퀴를 돌기 시작했을 때 관중들은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그가 마지막 직선 주로에 접어들자 관중들은 함성을 질렀다. 응원하는 수천 관중의 격려를 받으며 오빌은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부었다. 그가 결승선을 통과하고 경쟁자들의 포옹을 받는 순간 관중들은 기뻐하며 환호했다. 오빌은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새로운 친구들과 트랙을 걸어 나갔다.”

이 대회는 오빌이 다섯 번째로 출전한 대회였고, 다른 대회에서도 그는 모두 꼴찌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오빌이 경기를 지나치게 오래 끌어 사람들에게 폐가 되니 그에게는 트랙에 설 자격이 없고, 그 나이에는 애초에 출전하지 말아야 했다며 그를 판단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매번 꼴찌를 했음에도 오빌은 그날 다섯 개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경주하는 그의 모습을 본 그 누구도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를 판단할 사람은 관중도 경쟁자도 아니었습니다. 오빌은 어떤 규칙도 어기지 않았고, 심판진은 어떤 기준도 낮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경쟁자와 동일한 조건에서 경주하며 동일한 요건을 충족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그의 나이와 제한된 신체 능력이 난이도에 반영되었고, 그는 100세 이상 부문에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부문에서 그는 다섯 개의 세계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매번 트랙에 나서는 오빌에게 큰 용기가 필요했듯이, 우리의 형제 자매 중에도 매일 삶의 경기장에 나서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구주를 따르고 그분과 맺은 성약을 지키기 위해 벅찬 역경에 맞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부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 살든, 나이가 몇이든,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이 필요한 존재이며 삶에 목적과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환경이나 제한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입니다.

경주의 마지막 바퀴에서 관중들은 압도적인 환호로 오빌을 응원하며 그가 계속 달릴 수 있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그가 꼴찌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참가자들과 관중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경쟁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이것은 구주의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 준 아름다운 사례였습니다. 오빌이 경주를 마치자 그들은 모두 함께 기뻐했습니다.

마스터스 대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회중과 가정은 서로를 응원하는 집합소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힘을 얻는 성약의 공동체로서, 어떤 어려움이든 극복하도록 서로 돕고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힘과 격려를 주는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신성한 힘은 단합에서 오며, 이 때문에 사탄은 우리를 분열시키려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중에는 여러 이유로 교회 참석이 종종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에 관한 의구심으로 힘들어하는 사람, 사회불안 장애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국가 또는 인종이 다른 사람, 살아온 경험이나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 어울릴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기나 어린아이가 있어 수면 부족과 정서적 부담을 겪는 부모나, 부부와 가족으로 가득한 회중 속에 홀로 있는 독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여러 해 동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용기를 내고 있는 사람이나, 자신이 기준 미달이라 절대 소속되지 못하리라는 불안을 계속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의 와드에 이혼한 부부가 있다면, 일찍 귀환하는 선교사가 있다면, 자신의 간증을 의심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분의 판단이 아니라 여러분의 말과 행동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경험은 우리와 주님 간의, 또한 서로 간의 중요한 유대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며, 이는 우리의 영적, 정서적 행복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침례를 시작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성약에는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아야 하는 책임이 내재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해야 할 일 목록에 단순히 체크 표시를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과 보살핌은 더 높고 거룩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은 자애입니다.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짐을 더하기보다는 ‘서로의 짐을 [지게 됩니다.]’[모사이야서 18:8]”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넬슨 회장님은 여기에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지녀야 할 으뜸 되는 덕목입니다.” “구주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분의 참된 제자는 … 강화하고, 고양하며, 격려하고, 설득하며, 북돋습니다. … 다른 이들에게, … 또 다른 이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는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에 대한 구주의 가르침은 매우 간단합니다. 이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여러분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그들을 대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처럼 대하는 것은 우리 가족과 회중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종교를 믿거나 종교가 없는 형제 자매들도 포함됩니다. 또한, 다른 나라와 문화권에서 온 형제 자매는 물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며, 그분은 당신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자녀들이 당신을 사랑하고 또한 서로를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구주의 삶은 사회에서 버림받고 부정하게 여겨진 사람들마저 사랑하고, 모으고, 북돋는 모범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우리가 본받도록 명 받은 모범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발전시키고 종국에는 구주와 같이 되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그분의 복음은 한 일을 지워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어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분과 같이 되어 가고 그분과 같이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시온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심한 우울증을 겪었는데, 그때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완전히 길을 잃은 것 같았다는 말 말고는 그 느낌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 아버지께서 존재하시며 그분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 동안, 저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살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저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에 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참석했는데, 제가 “저활동 회원”이나 “덜 충실한 회원”으로 낙인찍힐까 봐, 누군가의 관리 대상이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제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판단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과 이해, 지지를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에 대해 할까 봐 걱정했던 몇몇 생각들은, 사실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참석하지 않을 때 그들에 대해 제가 했던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개인적인 경험으로 저는 서로를 불의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계명이 주어졌는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자신의 숨겨진 어려움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며 침묵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 있습니까?

우리 각자가 인생이라는 경주를 달리며 겪는 실제 삶의 어려움, 즉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짐과 시련, 장애물은 오직 주님께서만 온전히 알고 계십니다. 오직 그분께서만, 삶을 바꿔놓은 상처들과 지금도 여전히 영향을 주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온전히 이해하십니다.

종종 우리는 트랙에서 훨씬 더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가혹하게 판단합니다. 오직 주님께서만 우리 각자의 한계와 능력을 온전히 아시기에, 그분은 우리의 행위를 판단할 온전한 자격을 갖춘 유일한 분이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야기 속의 그 관중들처럼 우리가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제자의 길을 걷는 우리의 여정에서 서로를 응원합시다! 그렇다고 규칙을 어기거나 표준을 낮출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크고 둘째 되는 계명입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분은 또한 “만일 너희가 하나가 되지 아니하면, 너희는 나의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도움과 격려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서로를 위해 항상 그렇게 하겠다고 지금 결심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 단합할 수 있고, 구주께서 우리 각자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거룩한 일을 하실 공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경주, 이 필멸의 여정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고 느끼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말씀드립니다. 부디 계속 전진해 나가십시오. 구주께서만 지금 여러분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온전히 판단할 수 있으시며, 그분은 동정심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십니다. 인생이라는 경주의 위대한 심판자는 구주이시며, 여러분이 달리든, 걷든, 비틀거리든, 그 어려움의 정도를 온전히 아시는 분은 그분뿐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한계, 능력, 경험과 감추어진 짐뿐 아니라, 마음의 소망까지도 고려하실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은 세계 기록을 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부디 계속해서 나아가십시오! 계속 참여하십시오! 여러분은 소속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필요로 하시며, 우리에게도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세상 어디에 살든, 얼마나 외진 곳이든,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알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을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을 본향으로 데려오고 싶어 하십니다.

계속 구주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의 쇠막대이십니다. 그분을 놓지 마십시오. 저는 그분께서 살아 계시며, 여러분이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또한 간증드립니다.

우리가 모두 구주의 모범을 따르고 서로 응원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