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호나
우리의 자손들과 친구들이 알도록
2026년 1월호 리아호나


새로운 시작

우리의 자손들과 친구들이 알도록

필리핀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저는 늘 학년이 끝나는 날을 고대했습니다. 졸업식도 마찬가지로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저는 제가 배운 것을 기념한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끝났다”라는 사실이 그저 기뻤습니다. 또한, 학교 졸업식(graduation ceremonies)을 왜 commencement exercises(졸업식의 또 다른 표현—역자 주)라는 애정 어린 표현으로 부르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졸업(Graduation)은 “끝”을 의미하며 “commencement”는 시작을 의미합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그다지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나중에야 졸업식이 지난 성취를 기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삶의 새 장과 그 새 장에 찾아올 모든 미래의 기회를 축하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새해는 항상 상쾌한 느낌을 줍니다.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시작이자 때로는 재정비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새해가 되면 우리가 미래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점이 좋습니다. 미래에 초점을 두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미래를 고대하고 기대하면 마음이 몹시 들뜨기도 합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과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을 지니고 힘써 앞으로 나아가[고] … 끝까지 견[디어야 하느니라] …”(니파이후서 31:20)

베냐민 왕은 “구주에 대한 지식이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두루 퍼질 때가 이르리라”고 예언했습니다.(모사이야서 3:20)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 예언의 성취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다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빛을 들어 그것으로 세상에 비취게” 함으로써 예언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나는 너희가 치켜 들 빛이니.”(제3니파이 18:24)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도록 돕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분의 이름을 더 정확히 쓰고 사람들에게 그분의 삶과 사명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5년 11월에 있었던 북아시아 지역 선교부 지도자 세미나에서 우리는 선교부 지도자들에게 선교사들이 찾기 활동과 다른 여러 활동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도록 인도해 달라고 권고했습니다. 지역 회장단으로서 우리는 그들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친구 모두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살아 있는 선지자들이 주신 권고, 즉, 선교사들이 새로 만난 친구들을 찾은 바로 그 주에 성찬식 모임에 초대해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예배하자고 권유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우리는 우리 지역에 있는 교회 회원들에게도 같은 권유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친구들에게 우리와 함께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배우자고 권유하시길 바랍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의 권고에 따라 교회의 정식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교회 전체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행사하여 친구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우리 성찬식에서 그분을 예배하도록 권유한다면, 우리의 노력이 축복받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 기꺼이 성약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찾게 될 것입니다.

닐 엘 앤더슨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덜 이야기할 때, 우리가 그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합시다.”(닐 엘 앤더슨,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2020년 10월)  우리는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속죄를 더 알도록 더욱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신약전서에 기록된 두 맹인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더라.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마태복음 20:29~32)

이 구절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으며, 우리의 현재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지 말라고 설득하려 노력합니다. 그러한 설득은 때로는 날카로운 힐책으로, 더 자주는 교묘한 방해나 속임수 혹은 환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형태가 어떠하든 그 목표는 같습니다. 사람들이 구주를 찾고 아는 것을 방해하거나 그분에게서 시선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맹인처럼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침묵시키려 할 때에도 우리는 용기를 내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큰 소리로 더 자주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쳐야 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마태복음 10:32)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그분께 치유받는 것입니다. 이 치유를 경험하면 우리는 그분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을 데려오고자 하는 더 큰 소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회장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이따금 혹은 건성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우리를 인도해야 하는 지속적인 결심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 길로 초대받았습니다.”(댈린 에이치 옥스, “그리스도를 따름”, 2024년 10월)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며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치며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하며 ··· 우리의 자손들이 [그리고 친구들이]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무슨 근원을 바라보아야 할지 알게” 합시다.(니파이후서 2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