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성인 주간 메시지
이번 부활절에는 잠시 멈추어 백합화를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를 찾을 때, 우리는 그분의 평안이 언제나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진: Adobe Stock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생애의 마지막 며칠 동안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위안을 주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한복음 14:27)
죄와 사망을 이기신 그분의 궁극적인 승리, 즉 그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 절기에, 이 약속은 특히나 강력하다. 하지만 구주의 평안이 우리에게 항상 주어지지만, 그것을 느끼는 게 어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평안과 희망과 기쁨을 항상 동반할 수 있을까?
나는 그분을 적극적으로 찾음으로써 그것을 발견했다.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을 찾음
내가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을 찾는 한 가지 방법은 시를 쓰는 것이다. 나는 시와 함께 살아가고 숨 쉬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구주의 행하심을 따라 성주간 동안 매일 시를 읊었다.
첫해에 나는 구주께 사랑과 감사를 보이고 그분의 업적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시를 써야겠다는 영감을 받았다. 이것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딱히 내 얘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주로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묘사하듯 글을 적었다.
이듬해에 나는 구주 안에서 평안을 찾고자 시를 썼다. 또 부활절을 내 삶에서 더 중요하게 여기라는 제일회장단의 권고를 따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스도를 찾아본 덕분에 그분과의 연결이 참 깊어졌다. 나는 그분의 일과 가르침을 목격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글을 썼다. 그것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놀라울 만큼 내 이야기 같았다.
이것은 자기 자신 외에는 줄 것이 없는 사람의 삶이 어떨지 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혹은 심각한 육체적 질병을 겪거나 속박당하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 멍들고 결박당했던 사람, 혹은 진정으로 사랑을 베풀어 본 적이 없었지만 가장 큰 종류의 사랑에 대한 예수의 말씀에 감명을 받은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을 숙고하면서, 나는 구주의 놀랍고도 완전한 삶에 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세세한 부분을 아는 삶
구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세세하게 살펴보면서 나는 그분이 나와 무척 가까이 계심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사로야 나오라”라는(요한복음 11:43) 말을 듣기 위해 그곳에 있지도 않았고, 그분께서 우시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고 글을 쓰는 동안 마치 베다니 밖에 있는 무덤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지역에서는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삶의 긍정적인 면을 놓칠 때, 여유를 가지라고 상기시켜 주기 위해 “잠시 멈추어 장미 향기를 맡아 보라”라는 속담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잠시 멈추어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라고 하면 어떨까?(마태복음 6:28)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분이 주시는 행복과 만족과 평안을 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 생각에 핵심은 우리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 그분의 사랑 가득한 행위와 말씀의 세세한 부분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러분이 고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응하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예를 들어, 십자가 가까이에 서서 구주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누가복음 23:34 참조) 그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아니면 이런 예시도 있다. 구주께서 방금 여러분이 느껴 본 것과는 전혀 다른 평안을 약속하셨다고 하자.(요한복음 14:27 참조) 하지만 여러분은 메시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서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평안에 대해 가르치신 것일까?
또는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여러분은 오래도록 그리스도를 따랐다. 하지만 그분께서 돌아가셨다. 여러분은 그분의 시신을 돌보려고 갔다가 빈 무덤을 발견했다. 어떤 느낌이 들까? (요한복음 20:1~13 참조)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찾기 위해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은가? 나는 나름대로 백합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시간을 들여 그분의 삶의 이야기에서 그분의 사랑을 찾아보았고, 또 그것을 찾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분이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이다.
백합화를 생각해 본다면, 고통이 끝난 후에야 그분 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평안은 언제나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내게 그랬듯이, 이번 부활절에는 여러분에게도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이 깃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