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간증: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억함
온전함으로 향하는 소망
나는 미국 소설 “큰 바위 얼굴”(원제: “The Great Stone Face”, 저자 Hawthorne)을 읽었을 때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소설은 한 작은 마을과 그 근처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이 바위는 ‘큰 바위 얼굴’이라 불렸고, 마을 사람들은 그 신비로운 모습을 신성하게 여기며 위대한 품성과 도덕적 이상을 상징하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큰 바위 얼굴은 그들에게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하나의 이정표와도 같았다.
주인공 어니스트(Ernest)는 어려서부터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자라났고, 언젠가 그 얼굴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는 마을에 나타난 여러 유명 인물들에게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품성을 발견하고자 하지만, 그들의 삶과 얼굴에서는 자신이 바라던 고결함을 찾지 못하고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평생을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노년의 어니스트는 어느 날, 마을 아이들이 자신을 가리키며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큰 바위 얼굴이다! 그제야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랜 세월 품어 온 이상형을 닮아 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유명세나 큰 재산보다 어니스트와 같이 매일의 일상에서 고결한 성품을 가지고자 하는 소망과 노력이 큰 바위 얼굴이 되게 해 준다 믿으며, 이와 같이 되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마음속 소망을 품고 지내던 스무 살 무렵, 선교사님을 소개받고 친구와 함께 토론을 듣게 되었다. 곧 침례를 받고 교회에 개종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소망과 끝까지 견딤의 우리 교회의 가르침이야말로 고결한 성품을 기르고, 큰 바위 얼굴이 상징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장시켜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개종한 세월이 어느덧 46년이 되어 간다. 개종하기 전부터 품어 왔던 소망과, 복음 안에서 살아온 지난 세월은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계속 던진다. ‘나는 큰 바위 얼굴이 되었는가?’
아직도 너무 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 속에서, 해답은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며, 때로는 너무도 지난하고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 나와 같은 모든 이들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초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오늘날 일어나는 가장 큰 기적은 개심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개심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그분이 주시는 은사와 권능으로 이루어진다. 주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가 찾게 하시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명하신 주님께서, 그 방편을 마련하신 후에야 명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온전함에 이르고자 소망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그 방편이 바로, 우리의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며, 구주의 속죄를 통해서 참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만 은혜와 은사로 주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스스로에게 던져 온 질문, “나는 큰 바위 얼굴이 되어 가고 있는가?”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묻는 것과 같다. “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내 얼굴에 지녀 보았는가?”(앨마서 5:14)
이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은혜로운 그날이 오기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소망한다. 구주의 순종과 속죄 희생 그리고 사랑의 모범을 기억하며, 기도(구하고)하고 경전을 상고(찾고)하고, 상한 마음과 애통하는 심령으로 매주 합당하게 성찬(두드리며)을 취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선행하는 것이 은혜에 은혜를 더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생활하며 끝까지 견딜 수 있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