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구주이자 구속주
감독과 스테이크 회장으로 봉사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임은 성전 추천서 접견을 위해 회원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충실한 회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표현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성전 추천서 접견의 첫 두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❶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에 대한 신앙과 간증이 있습니까?
❷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간증과 그분이 형제님/자매님의 구주와 구속주라는 것에 대한 간증이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뿐만 아니라, 그분의 속죄와 우리의 구주이자 구속주이신 그분을 믿는 신앙을 표현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저는 이 두 질문을 하면서 구주와 구속주의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두 용어를 혼용하여 사용하지만, 사실은 서로 다릅니다. 가장 단순한 정의를 내리자면 구주는 구원하시는 분이고, 구속주는 구속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속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가족은 성탄 절기에 헨델의 메시야를 듣는 전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원래 부활절을 위해 쓰인 곡입니다. 1741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작곡가로서 인기가 시들해졌을 때, 그는 아일랜드에서 오라토리오 작곡 제의를 받았고 단 24일 만에 메시야를 완성했습니다. 헨델은 이 곡의 가사에 성경 본문을 사용했습니다. 아일랜드에서의 첫 공연을 위해 그는 채무자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돕는 자선 음악회를 기획했습니다. 그 수익금으로 그는 빚 때문에 수감되었던 142명의 죄수를 석방했습니다. 죄수들은 구속(Redeem)되었고, 그들의 빚은 갚아졌습니다.
신약전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속죄 이야기는, 스스로는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채무자라는 감옥에서 우리 모두를 해방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대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마가는 겟세마네의 유월절 밤에 그분께서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마가복음 14:33~35) 기도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분은 바로 수많은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빛과 어둠을 나누신 신회의 일원이셨으나, 겟네마네 동산에서 고통을 느끼셨을 때 아버지께 다른 길이 있는지 간구하시며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희생의 깊이를 제가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권 지도자로서 때로 과거의 실수라는 무게에 눌려 슬피 울며 탄식하는 회원들에게 조언해 왔습니다. 회원들이 자신의 죄로 인해 겪는 슬픔은 구주께서 하늘 아버지의 무수한 자녀들을 위해 기꺼이 겪으신 고난의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몰몬경은 구주의 고난에 “온갖 고통과 고난과 시험 … [그의] 백성의 고통과 질병”(앨마서 7:11)이 포함되었음을 깨우쳐 줍니다. 구주께서는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가 회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때에 그분께서 우리를 치유하고 위로하시기 위함입니다.
수년 전, 힝클리 회장님은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버지니아주 산속에 있는 어느 학교 교실이었는데, 그곳 소년들은 어떤 선생님도 다룰 수 없을 만큼 매우 거칠었습니다.
“수업 첫날 그 선생님은 소년들에게 스스로 자신들이 지킬 규칙과 그것을 어겼을 때 받을 벌칙을 정하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10가지 규칙을 정했으며, 그것을 칠판에 적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물었습니다. ‘이 규칙들을 어기는 사람은 어떻게 하지?’
‘상의를 벗기고 등을 열 대 때려요’라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며칠 후 … 톰이란 이름을 가진 덩치 큰 학생의 점심을 누가 훔쳤습니다. 훔친 학생은 10살 가량 된 배고팠던 어린 학급 친구였습니다.
꼬마 짐은 매를 맞으러 나오면서 자신의 상의를 입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상의를 벗거라’ 그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너도 같이 규칙을 만들었잖니!’ 소년이 상의를 벗었습니다. 속옷을 입지 않은 앙상한 몸이 드러났습니다. 선생님이 매를 들고 잠시 머뭇거리자, 덩치 큰 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소년의 매를 대신 맞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좋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맞을 수 있는 규칙이 있다. 모두 동의하는가?’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톰의 등에 다섯 대를 때리자, 매가 부러졌습니다. 반원들이 모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꼬마 짐은 두 손을 올려 뻗어 톰의 목을 끌어 안고 말했습니다. ‘톰, 네 점심을 훔쳐 미안해. 배가 너무 고팠어. 톰, 내 대신 매를 맞아 준 너를 평생 동안 사랑할거야! 정말이야, 영원히 너를 사랑할거야!’
헨델 메시야의 가사는 다음을 아름답게 반복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4~5)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자 구속주이심을 간증합니다. “그 어느 것에도 비길 데 없는 선물로서 거룩한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