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집
나부에 복원된 세 사도의 집에서는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히버 시 킴볼이 영국 프레스턴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하다, 리처드 머레이, 2013년
가족들의 이야기
히버 킴볼과 올슨 하이드가 영국에 있는 동안 재정 위기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고, 교회에서 후원하던 커틀랜드의 은행은 파산했다. 머린다 하이드의 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좌절 속에 교회를 떠났다. 머린다는 남편에게 그 시대의 혼란과 혼돈에 대해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간증을 나누었다.
“사랑하는 올슨, 시간과 공간이 허락하더라도 지금 상황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우리가 커틀랜드에서 겪고 있는 상황은 당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일들이에요.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 각자가 깨어 기도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지금은 서로에 대한 모든 신뢰가 사라진 것 같으니까요.”1
“사랑하는 올슨, 시간과 공간이 허락하더라도 지금 상황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우리가 커틀랜드에서 겪고 있는 상황은 당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일들이에요.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 각자가 깨어 기도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지금은 서로에 대한 모든 신뢰가 사라진 것 같으니까요.”1
갯필드 엘름 예배당. 1840년, 형제 연합회에서 후기 성도로 개종한 사람들이 그들의 예배당을 교회에 기부했다. 그 당시에는 이 예배당이 전 세계에서 교회가 소유한 유일한 예배당이었다.
사도들이 영국 제도 전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1839~1841년
히버 시 킴볼은 계시를 통해 해외로 두 번째 선교 사업을 나가도록 지명받았다.2 이번에는 여섯 명의 사도들이 그와 함께 미주리주 파웨스트에서 리버풀까지 이동했다. 그들은 영국 제도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 그룹에는 브리검 영, 존 테일러, 팔리와 올슨 프랫, 조지 에이 스미스, 윌포드 우드럽이 있었으며 올슨 하이드는 없었다. 올슨 하이드는 그 후 1841년 4월에 영국으로 갔다. 올슨은 그달 맨체스터에서 열린 교회 대회에서 윌라드 리차즈가 십이사도 정원회에 부름받았고, 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으며, 많은 가족들이 나부에 모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이드 가족의 집에 전시된 바늘꽂이는 예루살렘까지의 올슨의 여정을 연상시킨다.
4월 대회 후 히버 킴볼과 윌포드 우드럽, 그리고 그 외 몇몇 사도들이 귀환을 준비할 때 올슨 하이드는 홀로 유럽을 거쳐 팔레스타인으로 갔다. 그 여정에서 그는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자신이 선교 사업을 하는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1841년 10월 24일, 그는 감람산에 올랐고 고대와 현대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이 집합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을 헌납하라는 부름을 성취했다.
올슨이 떠나 있는 동안, 머린다는 나부의 여성 상호부조회에 가입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활동에 참여했다. 팔레스타인으로 선교 사업을 간 올슨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나부의 후기 성도들은 하이드 가족을 위한 집을 짓기 위해 노동력과 물품을 기부했다.
가족들의 이야기
올슨이 떠나 있는 동안, 머린다는 나부의 여성 상호부조회에 가입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활동에 참여했다. 팔레스타인으로 선교 사업을 간 올슨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나부의 후기 성도들은 하이드 가족을 위한 집을 짓기 위해 노동력과 물품을 기부했다.
성도들은 성지를 헌납하기 위해 올슨과 머린다 하이드 가족이 기울인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집을 지었다.
벽난로 선반 위 개 모양 도자기 장식품 비롯하여 우드럽의 집 거실에 전시된 가구들은 우드럽 부부의 영국 선교 사업을 상기시켜 준다.
해외로의 마지막 선교 사업은 조셉 스미스가 사망하고 수년이 지난 후에 시작됐다. 십이사도 정원회는 나부에 모였을 때,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교회 회원들이 복음에 충실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논의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유럽으로 가서 성장하고 있는 지부들을 감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임무를 맡게 된 사람은 윌포드 우드럽이었다. 그의 아내 피비도 선교사가 되어 남편과 함께 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 일은 이후 교회의 선교부 지도력에 대한 선례가 되었다.
우드럽 부부의 코네티컷 가족들과 새로 교회에 들어온 영국 개종자들은 우드럽 부부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들의 자녀들을 보살폈다. 윌포드의 여동생인 유니스 웹스터와 그녀의 가족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나부의 우드럽 소유 집에 살았다. 피비 우드럽은 남편의 선교 동반자로 봉사하면서 아들을 낳았고 조셉이라 이름 지었다.
가족들의 이야기
우드럽 부부의 코네티컷 가족들과 새로 교회에 들어온 영국 개종자들은 우드럽 부부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들의 자녀들을 보살폈다. 윌포드의 여동생인 유니스 웹스터와 그녀의 가족은 아직 완공되지 않은 나부의 우드럽 소유 집에 살았다. 피비 우드럽은 남편의 선교 동반자로 봉사하면서 아들을 낳았고 조셉이라 이름 지었다.
주
주
1. Heber C. Kimball collection[히버 시 킴볼 수집물], 1837–1898 (bulk 1837–1865) / Letters, 1837–1839 / Vilate Kimball letter: Kirtland, Ohio to Heber C. Kimball, Preston, England (Enclosure of note from Marinda W. Hyde to Orson Hyde), p. 3 (original), 17 (typescript) CHL Call Number: MS 12476.
2.교리와 성약 118:3 .
3. 킴볼, 빌리트 머레이, 1806~1867. Vilate M. Kimball letters, https://catalog.churchofjesuschrist.org/assets/1256a549-7c1a-4f08-abb1-8dcde0812ecf/0/7.
2.
3. 킴볼, 빌리트 머레이, 1806~1867. Vilate M. Kimball letters, https://catalog.churchofjesuschrist.org/assets/1256a549-7c1a-4f08-abb1-8dcde0812ecf/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