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럽의 복원된 집에서는 이 가족의 나부 생활을 엿볼 수 있는데, 당시 윌포드와 그의 아내는 윌포드의 선교 사업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 지냈다. 우드럽 가족은 다른 많은 초기 선교사 가족과 마찬가지로 떨어져 지내는 동안 주님께 더욱 온전히 의지하면서 신앙을 강화했다.
윌포드 우드럽은 1844년 5월 4일에 가족과 함께 이 벽돌집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5일 후, 그는 미국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조셉 스미스 선거 운동 임무를 받고 집을 떠났다. 집이 채 완공되지 않은 터라 마무리 작업이 끝난 방도 없었고 바닥도 일부만 깔려 있었지만, 피비와 아이들이 지내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윌포드는 귀환한 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집을 완공하기 위해 일했지만, 몇 달이 되지 않아 다시 영국 선교부 회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1846년에 가족이 나부를 떠나 성도들과 함께 서쪽으로 갈 무렵에도 집은 여전히 미완성 상태였다.
윌포드와 피비 우드럽은 둘 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신실한 회원이었다. 나중에 교회 제4대 회장이 된 윌포드는 1839년 4월 브리검 영에 의해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서 십이사도 정원회 회원으로 성임되었다. 윌포드는 미국과 영국에서 여러 차례 선교 사업을 했다. 이러한 선교 사업은 윌포드에게만큼이나 피비에게도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 이 집으로 이사하기 전 윌포드가 영국에서 2년간 선교 사업을 하는 동안 피비는 혼자서 아들 윌포드 이세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4개월 후에는 두 살배기 딸 세라 에머의 죽음도 겪었다. 윌포드가 없는 동안 이웃들이 우드럽 가족을 돌봐 주었지만, 피비는 이 힘든 시기에 여전히 남편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부부는 함께 선교 사업을 한 때도 있었다. 피비는 남편이 유럽에서 후기 성도들을 감리하는 동안 그와 함께 선교사로 봉사했다.
『성도들』 제1권
제45장에서 윌포드와 피비 우드럽의 영국 선교 사업에 대해 읽어 본다.
사전 정보
윌포드와 피비 우드럽의 집은
올슨과 머린다 하이드의 집에서 시작되는
사도들의 집 투어의 마지막 장소이다. 윌포드와 피비 우드럽의 집 투어에서는 안내자를 따라 응접실, 부엌, 식당, 작업실, 안방 침실, 자녀 방 등 총 6개의 방을 둘러보게 된다. 우드럽의 집 투어가 끝나면 나부의 나머지 지역도 둘러볼 수 있다.
여름철에는 피비 또는 윌포드의 누이 유니스(1845년에 윌포드 가족과 함께 지냈음)의 눈에 비친 우드럽 가족 이야기를 선교사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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