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로운 출발
2025년 11월호


14:19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로운 출발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그분 덕분에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절제된 표현의 성구: 예수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셨다고 간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로 얼마나 절제된 표현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진정으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선의 정수이자 원천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전 생애를 선한 일을 하시는 데 바치셨습니다. 그분은 “[넉넉히]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무한한 인자하심과 영원한 자비를 가지신 이입니다.

그분의 인자하심과 자비를 표현하려 하거나 요약하려는 시도는 절제된 표현일 것입니다! 참으로, 사도 요한이 설명하려고 했던 것처럼, 구주의 선하심을 빠짐없이 다 기록하려 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주신다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신” 구체적인 사례들이 성경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가진 그 사례만으로도 우리가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즉 그분의 기적을 목격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그분의 치유를 경험했더라면 어땠을지를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경이로움과 감탄이 솟구칩니다. 주님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과 대화하셨고, 병들고 부정한 자들을 어루만지셨으며, 지친 자들을 위로해 주셨고, 자유에 이르는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죄인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병환자와 맹인과 간음한 여인에게, 걷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비통에 잠긴 모든 어머니와 절망하는 아버지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과부에게, 정죄 받고 수치 당하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육체적으로 죽은 이들이나 영적으로 죽은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바로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 역시 엄청나게 절제된 표현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일은 당신이 치유하시고, 축복하시고, 가르치시고, 죄를 사하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새롭게 출발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절대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생명을 불어넣는 말씀 중 하나를 그분의 목소리로 듣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들아,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깨끗함을 받으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구주께서 이들 각자에게 하신 말씀은 짧지만, 그 속에는 용서와 치유와 회복과 평화, 그리고 영생이라는 새로운 지평이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소식은 그분께서 여러분과 제게도 이와 똑같이 새로운 출발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그분 덕분에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출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마련하신 계획의 핵심입니다. 이 교회는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새로 시작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이다

물과 성령으로 받는 침례를 통해 우리는 “거듭나”며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죄의 무게에 짓눌려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과, 힘든 삶과 엉망이 된 인간관계의 영향으로 고통받아 온 사람에게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소망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죄 사함이나 삶을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으셨지만, 친히 침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 각자를 위해 마련하신 새로운 시작으로 이끄는 길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출발은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침례를 우리가 새로 시작할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기회가 단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출발은 매일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우리의 완전하신 구주께서 주신 은사를 기념하며 떡 한 조각과 물 한 잔을 취하는 성찬을 통해서도 확실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주시려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삶에 헌신하고 기뻐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으며 옛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타락한 세상에 살며 겪는 쓰디쓴 좌절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는 구속주의 권능을 믿는 신앙을 계속 붙들며 노력하는 영혼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구주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당신의 신성한 속죄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약속을, 당신을 떨게 하고, 모든 땀구멍에서 피 흘리게 하며, 몸과 영이 고통받게 하고, 쓰디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게 만든 고통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함께하며 충실하게 견디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맺는 모든 성약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을 통해 우리는 “새 마음”과 “새 영”을 더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조금씩, 우리가 그분의 선하심을 우리 마음에 더 많이 받아들이고, 우리 내면에서 자신을 무너뜨리는 목소리를 몰아낼수록,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어갑니다. 우리가 그분을 진심으로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자 목자, 그리고 평강의 왕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우리는 마음과 생각 속에서 그분을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회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이기

회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 그리고 두 번째 기회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사랑하는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회개라는 신성한 은사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이제야 그 의미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에게 회개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는 것을 듣다 보면 감동을 받습니다. 얼마 전 한 청녀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하는 회개를 생각하면 엄청난 기쁨과 희망이 느껴져요.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께서 주시는 사랑과 행복이 느껴지거든요.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제가 힘들어하는 것은 어떤 일이든 도와 달라고 기도로 부탁드리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께서는 제가 뭔가 잘못하는 것을 잡아내시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그분들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계세요. 그게 바로 제게는 회개예요.” 이 청녀는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자신이 새로 시작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십니까? 여러분도 새롭게 출발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구주께서 성역을 베푸셨던 이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분이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살리시고,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 사람들 말입니다. 그분은 특정한 경제 계층이나 배경에서 성역을 베풀 사람을 선택하셨습니까? 의로운 자와 죄인을 구분하셨습니까? 더 자격이 있거나 더 사랑받을 만한 사람들을 따로 뽑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 죽어가던 종을 살리려던 로마의 백부장, 나병환자, 야이로, 맹인 바디매오 등이 그분께 큰 신앙을 가지고 나아왔으며 그분의 치유 권능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나사렛에서 온 랍비의 선하심과 권능이 자신의 삶과 미래를 바꿔 주기를 소망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걸고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치유 권능을 발휘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신앙이 흔들리던 이들도 축복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병든 아이의 아버지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외쳤고, 여러분도 그렇게 외쳐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아예 그분을 찾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 나인의 과부, 베데스다 못의 병자,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 등이 그 예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찾거나 따르지 않았을 때조차도, 그분께서 여러분의 삶에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계심을 느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경전 속의 인물들뿐 아니라,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려는 모든 이에게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죄 사함으로 얻은 새 삶이든, 병 고침을 받은 새 삶이든, 죽음에서 일으킴을 받은 새 삶이든 말입니다.

새로운 출발이란 여러분과 제게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그분의 선하심, 자비, 인자하심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새로운 출발은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계획의 핵심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아들의 사명입니다! 새로운 아침, 새로운 장, 새로운 기회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 지닌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성약에서 너무 오래 멀어져 있었던 사람은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받을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잘못을 너무 많이 한 사람은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너무 멀어진 사람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존재는 오직 대적뿐입니다. 여러분이 아닙니다.

새로운 출발은 단지 죄와 잘못을 저질렀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구주께서 베푸시는 선하심과 은혜를 통해 우리는 낡은 사고방식, 나쁜 습관, 심술궂은 성격, 부정적인 태도, 무력감, 남을 탓하고 책임을 피하려는 태도까지도 바꿀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년간 우리의 발목을 잡아 온 것들을 실제로 바꿀 수 있습니다. 새로운 출발의 원천이신 주님의 권능을 통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주시는 데 절대 지치지 않으십니다.

같은 죄나 같은 시련을 반복하며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우리 앞에 장애물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새로운 기회를 받을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계속 전진하십시오. 계속 노력하십시오. 주변에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아버지께 진심을 다해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출발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신뢰하십시오. 고의적인 죄, 무심코 되풀이하는 습관, 교만한 마음으로 행했던 반항은 과거에 남겨 두십시오. 우리는 과거의 모습에 그대로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통해 얻게 된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두 번째든 혹은 세 번째, 네 번째든, 심지어 백 번째든 그 기회를 받아들이십시오.

저는 저에게 주어져 왔고 앞으로 또 주어질 이러한 새로운 출발의 기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결론

구주께서 마지막으로 전하신 절제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소망을 품거나 기뻐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의 고통과 십자가의 극심한 고난이 끝난 순간, 그분은 그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성취되었고, 인류의 죄와 고통을 위한 대가가 온전히 치러졌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무한하고 영원한 희생을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속죄가 완성되려면, 그분은 사흘째가 되는 날 몸소 새 생명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즉, 아버지의 권능으로 영광스럽고 부활한 존재로서 새롭게 시작하셔야 했습니다.

그분이 항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셨고, “모든 일에 아버지의 뜻을 담당하”신 덕분에, 우리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부디 새로운 출발을 받아들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신앙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와 함께 수많은 장을 새로 써 내려가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끝이십니다. 우리의 수치와 고통의 끝이시며, 그분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여 과거를 뒤로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수없이 많은 아침을 새로 맞이하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진실로, “[우리] 평생에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우리]를 따”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사도행전 10:38; 또한 “살아 계신 그리스도: 사도들의 간증”, 복음 자료실 참조.

  2. 모로나이서 7:12~13 참조.

  3. 출애굽기 34:5~7 참조.

  4. 요한복음 21:25.

  5. 마가복음 2:5.

  6. 마가복음 5:41.

  7. 마태복음 8:3.

  8. 요한복음 8:11.

  9. 누가복음 8:48.

  10. 셰인 엠 보웬,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리아호나』, 2012년 11월호, 15~17쪽 참조.

  11. 요한복음 3:3; 모사이야서 27:25.

  12. 로마서 6:4.

  13. 모로나이서 6:8.

  14. 고린도후서 5:17.

  15. 교리와 성약 19:16~19 참조.

  16. 에스겔 36:26~28 참조.

  17.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그분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회개하도록, 즉 그분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과 믿음과 행동을 바꾸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깁니다.”(『나의 복음을 전파하라: 선교 사업 지도서』[2004], 64쪽)

    “회개의 교리는 사전적인 정의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은 그 계명을 그리스어의 동사인 metanoeo로 기록했습니다. 이 강력한 단어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단어에서, 접두사 meta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 접미사는 다음 네 가지의 중요한 그리스 용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nous는 ‘마음’을 의미하고, gnosis는 ‘지식’을 의미하며, pneuma는 ‘영’을 의미하고, pnoe는 ‘호흡’을 의미합니다.”(러셀 엠 넬슨, “회개와 개심,” 『리아호나』, 2007년 5월, 103쪽).

    “정기적으로, 매일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고, 더 고귀하게 하며, 우리의 개인적인 진보에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회개는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며 행복하고 화평한 마음을 갖게 되는 열쇠입니다. 또한 회개는 신앙과 결부될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권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매일 회개할 때 임하는 강화하는 권능을, 매일 여러분이 조금 더 잘하게 되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그 권능을 느껴 보십시오.

    회개하기를 선택할 때, 우리는 변화하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주께서 우리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존재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허락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그분을 통해 오는 구속의 기쁨을 누리기로 선택합니다. 회개하기로 선택할 때, 우리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러셀 엠 넬슨, “우리는 더 잘할 수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리아호나』, 2019년 5월호, 67쪽)

    “매일 회개함으로써 얻는 기쁨을 발견하십시오.

    회개는 얼마나 중요할까요? 앨마는 우리가 ‘회개와 … 주를 믿는 신앙이 아니면, 아무것도 전파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모사이야서 18:20] 회개는 영원한 영광을 소망하는, 책임질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

    성약의 길을 걸으면서 매일 회개하는 것은 긍정적인 영적 가속도에 힘을 더해 줍니다.”(러셀 엠 넬슨, “영적인 가속도의 힘”, 『리아호나』, 2022년 5월호, 98~99쪽)

  18. 마가복음 5:25~34 참조.

  19. 마태복음 8:5~13 참조.

  20. 마태복음 8:1~4 참조.

  21. 마가복음 5:22~43 참조.

  22. 마가복음 10:46~52 참조.

  23. 마가복음 9:17~27 참조.

  24. 요한복음 8:3~11 참조.

  25. 누가복음 7:12~15 참조.

  26. 요한복음 5:1~9 참조.

  27. 요한복음 9:1~7 참조.

  28. 요한복음 19:30.

  29. 앨마서 34:14~16 참조.

    “구주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심은, 그분께서 지상에서의 경험을 마무리 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메달리신 것은 그분의 영원히 확장되는 권능에 표말을 세운 것입니다.”(Spencer W. Kimball, in Conference Report, Apr. 1946, 49)

    “구주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순간, 즉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순간은 구주의 사명이 마무리된 순간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그분의 위대한 지상 사명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이 겪으신 극심한 고통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Joseph F. Smith, Gospel Doctrine, 5th ed. [1939], 449–50)

  30. 요한복음 8:29 참조.

  31. 제3니파이 11:11.

  32. 시편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