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대회
그분 안에서 영적으로 온전하게 됨
2025년 4월 연차 대회


11:29

그분 안에서 영적으로 온전하게 됨

온전함이 꼭 이 생에서의 육체적, 정서적 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전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그분을 향한 개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구주에게 소리쳤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셨고 그들은 가는 길에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구주께 돌아와 발 아래에 엎드려 감사를 표했습니다.

구주께서는 감사를 표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구주께 돌아온 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는 온전해졌습니다.(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에는 “thy faith hath made thee whole[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로 나옴—옮긴이)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육체적인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육체적으로 병 고침을 받고 영적으로도 온전해졌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숙고하며 그 반대도 가능할지 궁금해졌습니다. 병 고침과 온전함이 같은 것이 아니라면, 아직 육체적, 정서적 병 고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분을 통해 영적으로 온전하게 될 수 있을까요?

위대한 치유자께서는 그분의 시간표에 따라 우리의 모든 육체적, 정서적 고통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치유를 기다리는 동안 온전해질 수 있을까요?

영적으로 온전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는 선택의지를 행사해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그분께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그분께 드릴 때,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과 성약 관계를 맺을 때, 그분의 면전으로 돌아가 모든 치유를 받기까지 이 지상 생활의 어려움을 온유함으로 견디고 거기에서 가르침을 얻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됩니다. 치유를 기다리는 동안 그분과의 관계에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한다면 저는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소망을 낳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주는 온전함을 받으려고 노력할 때 소망을 얻습니다. 그분을 믿는 신앙은 치유를 향한 제 소망을 부풀게 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 신앙을 굳건하게 합니다. 이것은 강한 연쇄 작용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노스에게 그의 신앙이 그를 “온전하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노스는 선지자이자 아버지였던 야곱의 말씀을 상고하고, 영생을 얻는 법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온전함을 얻었습니다. 갈망과 겸손의 상태에 있던 이노스는 그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어찌 그 일이 이루어졌나이까?”하고 여쭈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네 신앙으로 말미암[아] … 네 신앙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 우리는 육체적, 정서적 치유를 기다리고 소망하는 동안 영적인 온전함을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할 때, 구주께서는 이노스에게 하신 것처럼 그분의 속죄 희생의 권능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무한한 속죄는 우리의 비탄과 슬픔도 치유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성 통증,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자가 면역 질환, 암, 불안 장애와 우울증과 같은 모든 아픔과 질병으로부터의 치유는 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종류의 치유는 주님의 시간표에 따라 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는 그분을 믿는 신앙을 행사함으로써 온전하게 될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완전하고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신랑이 왔을 때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워 두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우리의 등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개심의 기름으로 채울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온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혼인 잔치가 상징한 그분의 재림을 위해 준비될 것입니다.

그 비유에서 열 처녀 모두 신랑을 기다리는 정확한 장소에 있었습니다. 열 사람 모두 등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신랑이 밤중에 예상치 못한 시각에 왔을 때, 미련한 다섯 처녀의 등에는 기름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악한 것이 아니라 미련하다고 묘사되었습니다. 미련한 그들은 그들의 등불을 밝힐 개심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구하는 그들에게 신랑은 그들이 그를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그를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온전했습니다.

그들의 등은 소중한 개심의 기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며, 덕분에 슬기로운 처녀들은 혼인 잔치에 참석해 신랑의 오른편에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구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충실하라. 항상 기도하라. 너희 등잔을 손질하여 타고 있게 하며 너희에게 기름이 있게 하여 신랑이 올 때에 준비가 되어 있게 할지니”.

슬기로운 다섯 처녀, 벤 해먼드

슬기로운 다섯 처녀, 벤 해먼드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묘사한 아름다운 조각이 최근 솔트레이크 성전 근처 템플스퀘어 상호부조회 건물 바로 앞에 놓였습니다.

그곳은 열 처녀의 비유를 적용하기에 아주 적절한 위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약을 맺고 지킬 때, 특히 주님의 집에서 맺을 수 있는 성약을 맺고 지킬 때, 개심의 기름으로 우리의 등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빛을 나누고 있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슬기로운 다섯 처녀를 상징하는 여인들은 그들의 개심의 기름을 나누는 대신, 기름으로 가득 차 밝게 빛나는 등불을 높이 듦으로써 그들의 빛을 나누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어깨를 기대고 팔을 두르고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빛으로 나아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백성의 빛이 되라. 산 위에 놓인 성읍이 숨기울 수 없느니라.

… [우리가] 촛불을 켜서 그것을 말 아래에 두느냐? 아니라, 오히려 촛대 위에 두나니, 이에 그것이 집안에 있는 모두에게 비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 빛을 이 백성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그분의 빛을 나누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등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개심의 기름으로 가득 채우고 등잔을 손질하여 계속 타오르도록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그 빛을 비추십시오. 우리는 빛을 나눌 때 예수 그리스도의 위안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며, 그분을 향한 우리의 개심은 깊어지고, 치유를 기다리는 동안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빛을 밝게 비춘다면 기다리는 동안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병 고침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개심으로 온전함을 얻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원리를 잘 보여 주는 경전의 예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가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한 고난이 있었는데 바울은 그것을 없애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에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의 이야기는 우리가 약한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힘이 완벽하게 될 수 있다는, 즉 완전하고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필멸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바울처럼 신앙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이 치유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온전했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도 기뻐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개심과 그분으로부터 받은 힘의 빛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빌립보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바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자매 형제 여러분, 답은 ‘그렇다’입니다. 우리는 육체적, 정서적 치유를 기다리면서도 영적으로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온전함이 꼭 이 생에서의 육체적, 정서적 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전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그분을 향한 개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개심의 빛을 빛내는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 [받기를 선택하는] 자는 적으니라.”

모든 사람은 부활할 때 육체적, 정서적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그분 안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제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이켜 개심했음을 선언합니다. 저는 그분 안에서 온전하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살아 계시기에 그분의 시간에 따라 모든 것이 회복되며 고쳐지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의 제자로서 갈릴리에서 구주를 따르며 섬겼습니다.

그녀는 십자가 아래 서서 그분의 죽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매장 준비를 마치기 위해 그분의 무덤으로 갔다가 무덤 돌이 옮겨진 것과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리아가 무덤에서 울고 있을 때, 처음에는 천사가, 그 후에는 구주께서 물으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울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마리아야”하고 친절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녀는 그분을 알아보고 “랍오니 … 선생님”하고 경건히 답했습니다.

이사야는 구주에 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리라.]”

그분의 부활로 마리아의 눈물이 씻기었습니다. 분명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눈물도 씻어 주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첫 증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다른 이에게 증거한 첫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겸손히 마리아의 간증에 제 간증을 더합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종국에는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육체적, 정서적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치유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위대한 치유자를 믿는 신앙으로 영적으로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누가복음 17:11~19 참조. “Made whole(온전하게 되다)”라는 표현은 ‘구하다, 구조하다, 구원하다, 치유하다’라는 그리스어 단어에서 번역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육체적으로 치유할 수 있으며 그뿐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우리를 구원하고 구조하고 구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중요한 진리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2. 앨마서 40:23 참조. “영혼은 육신에게로 회복되겠고, 또 육신은 영혼에게로 회복될 것이라. 또한 각 사지와 관절이 그 몸으로 회복되리니, 참으로 머리털 하나라도 잃지 아니하고, 모든 것이 그 적절하고도 완전한 구조로 회복되리라.” 또한 러셀 엠 넬슨, “예수 그리스도—위대하신 치유자”, 『리아호나』, 2005년 11월호 참조. “부활의 은사는 주님의 치유를 완결 짓는 가장 완전한 은사입니다.”

  3. 모로나이서 7:40~42 참조.

  4. 이노스서 1:8.

  5. 이노스서 1:7.

  6. 이노스서 1:8.

  7. 마태복음 25:1~13 참조.

  8. 그들이 미련한 이유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거나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9. 조셉 스미스 역, 마태복음 25:11.(후기 성도 영어 경전 마태복음 25:12, 주석 a)

  10.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장로는 열 처녀의 비유에 관해 이렇게 가르쳤다.

    “그 처녀들이 사용한 등을 간증의 등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미련한 처녀들은 간증의 등을 가지고 갔으나 기름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 기름을 개심의 기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이야기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이기적이어서 함께 나누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일까요, 아니면 개종[개심]이라는 기름은 빌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 것일까요? 계명에 끊임없이 순종함으로써 생기는 영적인 힘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요? 부지런히 경전을 공부하고 상고하면서 얻은 지식을 그러한 지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충실한 후기 성도가 복음을 통해 받는 평안이 역경이나 큰 어려움을 겪는 개인에게 전이될 수 있을까요? 분명히 이런 질문 각각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베드나 장로는 더 나아가 “간증이라는 등이 계속 타오르게 하고 개심이라는 기름을 충분히 얻기 위한 우리 개개인의 책임을” 설명했다. “이 소중한 기름은 한 번에 한 방울씩, 즉 ‘말씀에 말씀을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니파이후서 28:30) 인내하고 꾸준히 노력할 때 얻게 됩니다. 지름길은 없습니다. 마지막에 부산을 떨며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주께로 돌이켰고”, 『리아호나』, 2012년 11월호, 109쪽)

  11. 교리와 성약 33:17. 러셀 엠 넬슨 회장은 이렇게 권고했다. “지금은 여러분과 제가 우리 주이자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제자의 길을 우리의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할 시간입니다.”(“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리아호나』, 2024년 11월호, 121쪽)

  12. 슬기로운 다섯 처녀 조각은 벤 해먼드의 작품으로 다섯 처녀를 다양한 연령대와 인종의 여인으로 표현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이켜 개심한 제자인 여인들의 다양성을 나타냈다.

  13. 성찬을 취할 때 우리는 주님과 맺은 모든 성약을 새롭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겠다는 새로운 성약을 맺는다. 신권 의식에 합당하게 참여하고 성약을 맺고 지킬 때, 우리는 온전하게 된다. 성찬 찬송 “생명의 떡과 물”에는 이 원리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생명의 떡과 물로

    내 영혼 채우리

    나를 온전케 하사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하나 되게 하소서

    (『찬송가—가정과 교회를 위한 음악』, 1008장)

  14. 마태복음 5:14.

  15. 제3니파이 12:14~16.

  16. 한 찬송가 가사에는 이렇게 나온다.

    내 안의 작은 빛 환하게 비추리 …

    어디에서나 환하게 비추리 …

    예수 주신 빛을 환하게 비추리

    이 빛을 환하게 비추리

    (“내 안의 작은 빛”, 『찬송가—가정과 교회를 위한 음악』, 복음 자료실)

  17. 고린도후서 12:7.

  18. 고린도후서 12:8 참조.

  19. 고린도후서 12:9.

  20. 고린도후서 12:9~10.

  21. 빌립보서 4:4; 또한 고린도후서 1:3~4 참조.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22. 데이비드 에이 베드나, “시온이여 네 힘을 입을지어다”, 『리아호나』, 2022년 11월호, 94쪽 참조.

  23. 마태복음 22:14; 또한 교리와 성약 121:34~35 참조.

  24. 누가복음 8:2~3 참조.

  25. 요한복음 19:25 참조.

  26. 요한복음 20:15; 또한 13절 참조.

  27. 요한복음 20:13.

  28. 요한복음 20:16.

  29. 이사야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