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나를 따르라
회개에 대한 참신한 시각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는 회개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정말 많이요. 왜 그럴까요?
회개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신앙개조 제4조 참조) 회개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저 좋은 일이라서도 아니고, 우리의 죄가 “잊혀지게” 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교리와 성약 58:42 참조) 회개는 우리가 좀 더 구주와 같이 되고, 언젠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과 함께 영원히 사는 데 필요한 일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자기 자신, 그리고 삶의 전반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가져오는 생각과 마음의 변화”입니다. 따라서 회개의 목적은 우리가 변화하여 하나님과 우리 자신, 삶을 다른 방식, 더 나은 방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까요?
그리스도께로 향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데일 지 렌런드 장로님은 “회개하다”의 스웨덴어 단어가 “omvänd”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말 그대로 “돌아서다”라는 뜻이지요.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결부되어야 하며, 그분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앙,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다는 신앙, 그리고 우리가 더이상 실수하지 않도록 도우실 것이라 믿는 신앙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이 있을 때 그분의 속죄는 우리 삶에 효력을 나타냅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마주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하려고 그 사람 쪽으로 향해 갈 때, 뒷걸음질로 가나요? 아니면 발을 옆으로 질질 끌면서 가나요? 그렇게 하면 상대방에게 잘 다가갈 수 없겠지요. 우리가 향하는 장소를 (또는 우리가 만나려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경로를 벗어나기 쉽습니다. 즉, 상대방을 마주하며 다가갈 때 더 수월하고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겠지요.
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주께서는 회개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받아들이시고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회개는 구주께 초점을 둘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더 많이 행사하고, 실수를 인식하며, 사과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할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과 같이 됩니다.
우리를 향한 구주의 부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분을 보고 구주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상상해 보세요!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보라, 주 너희 구속주가 육체로 죽음을 겪었음이라. 그런즉 그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자기에게 나아오게 하려고 모든 사람의 고통을 겪었느니라. …
그리고 회개하는 영혼으로 인한 그의 기쁨은 얼마나 큰고!”(교리와 성약 18:11, 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속죄 권능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낮추고 구주께 의지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그분을 더욱 닮게 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구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칠십인 정원회의 크레이그 시 크리스턴슨 장로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죄를 회개하면서, 우리는 그 후에 따를 커다란 기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밤이 길어 보일지라도 아침은 반드시 옵니다. 구주의 속죄로 인하여 죄와 고통에서 벗어난 우리가 느낄 평안과 찬란한 기쁨은 얼마나 경이롭겠습니까!”
그리고 이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자녀가 그분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을 나누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또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발전하라고 권유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회개하라!”라고 외치며 돌아다녀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대신 우리는 적절한 때에 주변 사람들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고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이 되도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격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