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웨스트 성전 부지는 당시 수천 명이 거주했던 큰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성전은 비록 완공되지는 못했지만 초기 성도의 삶에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성도들이 어느 곳에 정착하든, 주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성전을 지을 장소를 계시하셨다. 대개 이는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다. 오늘날, 한 개의 기념비와 네 개의 성전 모퉁잇돌이 시온의 스테이크를 건설하려 한 성도들의 노력과 이곳에서 주어진 계시를 기리고 있다.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성전을 지으려는 노력이 폭도들의 폭력 행위로 좌절된 후인 1833년, 후기 성도들은
오하이오주 커틀랜드에 주님의 집을 짓는 일에 집중했다. 커틀랜드 성전은 1836년 3월27일에 완공되고 헌납되었다. 그리고 1838년, 주님께서는 미주리주 콜드웰군 파웨스트 중심부에 새 성전을 짓도록 명하셨다. 미국의 독립 기념일인 1838년 7월 4일, 조셉 스미스는 성장하는 도시의 중앙 광장에 네 개의 모퉁잇돌을 놓는 정초식을 감리했다. 수천 인파가 이 행사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성전을 짓기 위한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주리주 현지 주민들과의 충돌로 후기 성도들이 1838년 11월에 파웨스트를 남겨 두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성도들의 본대가 떠난 뒤 몇 개월이 지나, 십이사도 정원회의 사도 다섯 명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주님의 명에 순종하여 파웨스트 성전 부지로 돌아갔다.(
교리와 성약 115:11;
118:5) 1839년 4월 26일, 사도들은 그곳으로 돌아가 정원회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 윌포드 우드럽과 조지 에이 스미스를 성임했으며, 이는 영국 선교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성도들』 제1권 제24~33장에서 성도들이 파웨스트 시절에 관해 더 알아본다.
사전 정보
파웨스트 성전 부지에는 울타리로 구분된 구역 안에 그곳에서 열렸던 행사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울타리 주변으로는 화장실과 야외 활동 공간, 농지가 있다. 이곳에는 선교사들이 봉사하는 방문자 센터가 없으므로 안내자 없이 부지를 둘러보아야 한다. 울타리 구역 안에서 네 개의 성전 모퉁잇돌을 찾아본다. 이 부지를 둘러보는 데는 대개 30분 정도가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