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성인 주간 메시지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오신 메시야를 기쁘게 맞이하십시오
2026년 4월호 청년 성인 주간 메시지


특별 영적 메시지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오신 메시야를 기쁘게 맞이하십시오

온화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여러분 각자의 삶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종려 주일에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겸손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승리의 입성을 하셨던 역사적인 종려 주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의 거리는 유월절 축제를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구주의 제자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까? 바로 그 순간이 그들이 기다려왔던 순간이었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야로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기다림은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오셨기 때문에 그들은 해방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간절한 기대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기대는 올바른 것이었을까요?

잘못된 기대

시간이 지나면서 찬양과 환희의 환호성은 사그라들었습니다. 인생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군중은 흩어졌고, 사람들은 일상적인 활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고요한 최후의 만찬을 드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가르치고 격려하셨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찬 의식을 주셨는데, 그분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겟세마네라고 불리는 동산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홀로 세상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은 “홀로 포도즙틀”을 밟으셨고 그분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이사야 63:3)

그다음 날이 저물 무렵, 예수께서는 특별할 것 없는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채 잔인하고 굴욕적인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경배가 아닌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태복음 27:42)

이 모습을 본 어떤 사람들은 진심으로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며칠 전에 이 모든 소동을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 아니었던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인물이 아니었던가? 자기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으면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진정한 사명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모두 삶에서 기대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 사이에 때때로 단절이 일어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삶에서 무척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높은 이상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복음이 추구하는 이상이 필멸의 삶에서 겪는 엉망진창의 평범한 현실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완벽한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항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완벽한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축복과 행복을 느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모든 충실한 회원들은 굳건하고 충만한 결혼과 가정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중 몇몇은 이러한 축복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매우 복잡하고 벅찬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아름답고 보편적이며 영원한 이상이 고통스럽고 개별적인 필멸의 삶의 현실과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절대로 복음의 이상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현실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필멸의 정신과 마음으로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개념을 함께 안고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 마음에 생기게 되는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니 뭔가 잘못한 게 틀림없어.” “내가 바라던 축복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그 약속은 진짜가 아닌가 봐."

하지만 어쩌면 다른 관점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라고(이사야 55:8~9) 하지 않으셨습니까?

산에 올라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십시오

높은 고도에서 보면 사물이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알게 된 적이 있습니까? 산 정상에 도달하여 산골짜기를 다시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높고 더 거룩한 관점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분의 길을 따르라고 권유하십니다. 여러분은 세상과 세상이 주는 어려움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제적인 창조와 구원의 계획이라는 맥락에서 사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여러분은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육과 직업, 누구와 결혼하고 언제부터 가정을 꾸릴지 등 중요한 결과가 따르는 결정들입니다. 이 모든 선택을 하려면 하늘의 축복과 성신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 축복과 인도는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축복과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가르치신 패턴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으로 그것을 연구해야만 [하며,] 그러고 나서 그것이 옳은지를 [하나님께] 물어야”(교리와 성약 9:8) 합니다.

여러분은 두뇌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축복과 인도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소망, 꿈, 바람을 그분과 나누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그분이 여러분의 방식으로 사물을 보시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방법으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의 눈을 열어 달라고 그분께 간구하십시오. 그때가 바로 해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산에 올라 더 높은 관점, 즉 하나님 아버지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매우 크고 버거워 보였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훨씬 작으며,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필멸의 눈에는 중요하지 않게 보였던 것들의 영원한 중요성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구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이신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42)

여러분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올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여러분의 방법이 아닐 수 있으나, 분명 주님의 방법으로 올 것입니다. 때때로 응답은 경전, 성스러운 느낌 또는 신뢰할 만한 사람의 말을 통해 오기도 하지만, 응답은 반드시 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진정으로 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시며, 여러분의 이름을 아십니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 아침, 빈 무덤 밖에서 울고 있던 한 젊은 여성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요한복음 20:16 참조) 여러분이 응답을 받는 순간은 바로 그와 같이 거룩하고 평안을 주는 순간일 것입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습니까? 구주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종려 주일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시자 많은 사람이 몰렸습니다. 영광스럽고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하신 일이었는데, 그 일의 상당 부분이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가운데 조용하고 은밀하게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사람들이 메시야로부터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사람들, 즉 인류와 여러분과 제게 필요한 일이였으며, 우리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모든 인류와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필요한, 하늘의 은사와 속죄 희생이었습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라고 말했습니다.(스가랴 9:9)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셨던 것처럼, 온화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여러분 각자의 삶에 들어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