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와 그의 가족은 1838년 봄에 미주리주 파웨스트에서 레이군 리치몬드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데이비드는 마을 중심부 근처에 법원에서 동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집을 지었다. 데이비드와 그의 가족은 1878년 6월 1일에 토네이도로 집이 파괴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토네이도가 지나간 후, 집은 재건되었다.
데이비드 휘트머와 그의 가족은 미주리주에 정착한 첫 번째 후기 성도 무리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1832년에 인디펜던스 외곽에 작은 정착촌을 이루었다. 미주리주 정착민들은 이듬해 11월에 데이비드와 그가 감리하던 지부를 그들이 살던 집에서 몰아냈다. 1834년에 클레이군에서 피난처를 찾은 데이비드는 교회의 두 번째 스테이크를 감리하라는 부름을 수락했다.
데이비드와 그의 가족은 1837년에 미주리주 콜드웰군 파웨스트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휘트머 가족들과 교회 지도자들 간에 긴장이 불거졌다. 파웨스트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데이비드는 조셉 스미스의 지도력에 대 확신을 잃었으며 교회의 반대자들과 합류했다. 데이비드와 그의 가족은 결국 리치먼드로 거처를 옮겼다. 데이비드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이 아니었음에도 계속해서 몰몬경에 대해 간증했다. 그는 리치몬드에서 마구간을 운영했으며, 1888년 1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 데이비드 휘트머를 포함한 세 증인의 기념비가 리치먼드 개척자 묘지에 세워져 있으며
,이는 리치먼드 묘지로부터 북동쪽으로 0.8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데이비드 휘트머의 미주리주 생활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성도들』 제1권 제26~27장과
제2권 제30장을 읽어 본다.
사전 정보
본래 데이비드 휘트머가 살던 집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일 층 짜리 벽돌 건물이 그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제2 침례 교회 옆 건물에 붙은 작은 청동 명판이 데이비드 휘트머의 집 부지를 표시하고 있다. 이 건물은 사유 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