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들을 둔 어머니들을 위하여
엄마가 되는 것이 그렇게 "훌륭한 일"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
엄마가 되는 일은 기쁨과 어려움이 뒤섞여 있다.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 갓난아기를 키우던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갓난아이를 돌보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겨우 교회에 도착했던 때였다. 모임이 끝난 후, 연세가 지긋하신 한 자매님이 내 팔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정말 너무 훌륭하지 않나요?"
마음에 갑갑함을 느낀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평생 엄마가 되고 싶었다. 분명 엄마가 되는 것에 멋진 부분이 정말 많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 순간에는 그다지 "훌륭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출산을 겪은 후 이런 생각과 걱정이 머릿속에 스며들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던 거라면 어떻게 하는 걸까? 아이가 신생아이던 시절, 나는 다른 엄마들이 말하던 소위 끊임없는 "훌륭하고 멋진 일"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엄마로서 매 순간을 사랑하지 않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나쁜 엄마가 된 것일까?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훌륭하고 멋진 일을 찾음
나는 최근에 아기를 낳은 친구 몇 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그 친구들도 어려운 나날들(그리고 밤들)을 보냈다는 것을 듣고 안도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엄마가 되는 일에 훌륭하고 멋지다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어쩌면 그 일이 힘든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사실 엄마가 되는 일을 어려운 일, 희생적인 일,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훌륭하고 멋진 일이라고 표현한 것이 내 마음을 갑갑하게 했던 것이었는데, 아기가 24시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에게만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전자가 훨씬 현실적인 표현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교회에서 말을 걸었던 자매님이 "엄마가 되는 일이 정말 어렵지 않나요?"라고 해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득 찬송가 "예수께서 베푸신 사랑"의 가사가 떠올랐다.
구주의 속죄는 어렵고, 이타적이며,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노래에서 훌륭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속죄를 묘사했다.
엄마가 됨으로써 내가 배운 것
이제 우리 아들은 한 살이 되었다. 엄마가 된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나는 종종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이신 제프리 알 홀런드 회장님의 말씀을 생각하곤 한다. "인간이 지닌 그 어떤 사랑도 자녀를 향한, 헌신적인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에 근접한 것은 없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나는 구주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또한 다정하신 나의 어머니에 대해, 그리고 그분이 내 삶에서 나를 위해 치르신 무수한 희생에 대해 더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훌륭하다라는 단어는 우리 어머니를 묘사하는 데 내가 사용할 단어였다.
경전에는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끊임없이 나온다. 엄마가 되어서 그런 구절을 읽게 되자, 내 삶에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사야 49장 15절에서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라는 구절을 다시 읽었을 때, 끊임없이 아기를 먹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되어 훨씬 더 실제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몸은 내게 의지하고 있는 자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못하겠지만, 우리를 향한 구주의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내가 맺은 성전 성약에서 약속받은 축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구주의 가르침의 본보기가 되고자 하는 더 큰 목적을 갖게 되었다.
엄마로서 나는 매일 어려움과 기쁨이 뒤섞인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비록 "훌륭하고 멋진"이라는 표현이 알맞다고 느껴지지 않는 날이 있을지언정, 그 표현은 엄마로서의 삶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내가 항상 "훌륭하고 멋진" 엄마라고 느끼지는 않지만, 매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면서 우리 아들에게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