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비넨—콩고 민주 공화국”, 『성도들 이야기』(2024)
윌리 비넨—콩고 민주 공화국
중앙 아프리카의 한 청년이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무슨 일 있었나요?
1992년 8월, 스물세 살의 윌리 사브웨 비넨은 전기 공학 분야에서 직업을 찾고 싶었다. 그는 중앙아프리카 국가 자이르의 도시인 루붐바시에서 Institut Supérieur Technique et Commerciale[고등기술상업대학]을 다니며 열심히 훈련받고 있었다. 그는 이 학교에서 막 첫해를 마쳤고 계속해서 정규 교육을 받고 싶었다.
방학 동안 윌리는 루붐바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320킬로미터 떨어진 고향 콜웨지로 돌아와 있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교회의 콜웨지 지부에 다녔다. 1978년 신권에 관한 계시가 주어진 후, 회복된 복음은 나이지리아, 가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짐바브웨를 넘어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콩고 공화국, 우간다, 케냐, 나미비아, 보츠와나, 스와질란드, 레소토,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등 12개국 이상의 아프리카 국가로 전파되었다. 자이르에 최초의 후기 성도 선교사들이 도착한 때는 1986년이었으며, 이제 이곳에는 약 4천 명의 성도들이 있었다.
윌리가 콜웨지에 도착한 직후, 지부 회장은 그에게 접견을 하자고 했다. “형제님이 전임 선교사로 나갈 수 있도록 같이 준비합시다.”라고 그는 말했다.
깜짝 놀란 윌리는 “저는 공부를 계속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전기 공학 과정에서 3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선교 사업을 먼저 나가야 합니다.” 지부 회장이 말했다. 그는 윌리가 지부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할 자격을 갖춘 첫 번째 청년임을 언급했다.
“아니요.” 윌리가 말했다. “그렇게 안 될 거예요. 저는 학업을 먼저 마칠 겁니다.”
윌리의 부모는 그가 지부 회장의 권유를 거절했다는 사실을 알고 언짢아했다. 어머니는 본래 생각을 겉으로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지만 아들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왜 선교 사업을 미루는 거니?”
어느 날, 윌리는 외삼촌 시몬 무카디를 방문하라는 영의 속삭임을 느꼈다. 그가 외삼촌의 집 거실로 들어갔을 때 탁자 위에 놓인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책이 웬지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Le miracle du pardone』라는 제목이 씌어 있었다. 스펜서 더블유 킴볼의 저서 『용서가 낳는 기적』의 프랑스어 번역본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윌리는 책을 집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기 시작했다.
우상 숭배에 관한 내용이 나왔고, 윌리는 금세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킴볼 장로는 사람들은 나무와 돌과 진흙으로 만든 신에게 절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소유물도 숭배한다고 했다. 형체가 없는 우상들도 있었다.
그 부분을 읽고 윌리는 잎새처럼 몸을 떨었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고 계신 것 같았다. 선교 사업을 나가기 전에 학업을 마치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지부 회장을 찾아가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무슨 일 있었나요?” 지부 회장이 물었다.
윌리가 그 이야기를 하자, 지부 회장은 선교사 지원서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이제 이것부터 작성합시다.”
윌리가 선교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자이르는 아프리카의 콩고강 유역에 있었으며, 그곳에서는 여러 민족과 지역의 집단들이 수 세대에 걸쳐 서로 싸우고 있었다. 최근 윌리가 사는 지방의 주지사는 그 지역에서 다수를 이루는 카탕가족 주민들에게 소수인 카사이족 주민들을 쫓아내도록 촉구했다.
1993년 3월, 폭력 사태는 콜웨지로 확산되었다. 카탕가의 투사들은 칼과 곤봉, 채찍 등의 무기를 휘두르며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카사이족 가족들을 위협하고 그들의 집을 불태웠으며, 집 안에 누가 있고 어떤 물건이 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많은 카사이족들은 습격자들을 피해 숨거나 도시에서 도망쳤다.
카사이족인 윌리는 투사들이 자신의 가족을 추적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해를 입지 않기 위해 그는 선교 사업 준비를 보류하고 가족이 루푸타로 도피하는 일을 도왔다. 루푸타는 약 560킬로미터 떨어진 카사이족 마을로, 그의 친척 중 일부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
카탕가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드물었기 때문에 수백 명의 카사이족 난민들은 콜웨지 기차역 밖 사방 곳곳에 천막을 쳤다. 난민촌에 도착한 윌리와 그의 가족은 피난처를 찾을 때까지 별빛 아래서 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다. 교회와 적십자, 그 밖의 인도주의 단체들은 난민촌에서 난민들에게 음식과 텐트, 의료 지원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소에는 적절한 위생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에 분뇨와 쓰레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난민촌에서 몇 주를 보낸 비넨 가족은 기차가 난민촌의 여성과 아이들 일부를 지역 밖으로 수송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윌리의 어머니와 네 자매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떠나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윌리는 아버지와 형을 도와 고장 난 개방형 화물차를 수리했다. 화물차가 준비되자, 그들은 그곳을 출발하는 열차에 화물차를 연결해 난민촌을 떠났다.
몇 주 후 루푸타에 도착한 윌리는 그곳을 콜웨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마을은 작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자신이 받은 전기 공학 기술을 써먹을 직장도 없었다. 게다가 교회 지부도 없었다.
‘여기서 뭘 해야 하지?’ 그는 생각했다.’
주석 및 출처 인용은 복음 자료실에서 전문을 참조한다.
루푸타에서 끝까지 충실하여
루붐바시에서 전기 공학을 공부한 윌리 비넨에게 루푸타의 삶은 상상과 달랐다. 루푸타는 농업 중심 사회였다. 그가 가족과 함께 살던 콜웨지 인근에서 민족 분쟁이 계속되는 한 그들은 루푸타에 머물며 땅을 갈아야 했다.
다행히 윌리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농사짓는 법을 배운 덕에 콩, 옥수수, 카사바, 땅콩 등을 재배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파종한 콩을 수확할 때까지 가족은 먹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지었으며, 조금이라도 남는 작물이 생기면 팔아서 소금과 기름, 비누, 약간의 고기를 구입했다.
안전을 위해 콜웨지에서 도망친 성도들 중에서 루푸타에 정착한 사람은 50명가량이었다. 마을에는 지부가 없었지만 그들은 매주 커다란 집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 그룹에는 전 콜웨지 지방부 회장을 포함하여 몇몇 남성이 신권을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성찬식을 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그들은 주일학교 반을 열었고 각 장로가 돌아가며 모임을 이끌었다.
이 기간에 윌리와 동료 성도들은 킨샤사에 있는 선교 본부와 연락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돈을 벌 때마다 십일조를 따로 떼어 두고 승인된 교회 지도자에게 전달할 날을 기다렸다.
1995년 어느 날, 윌리의 가족은 그를 콜웨지로 보내 가족의 오래된 집을 팔기로 결정했다. 루푸타의 성도들은 윌리가 그곳에서 지방부 회장을 만나게 될 것을 알고 십일조를 바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돈을 봉투에 넣어 윌리와, 그와 함께 갈 또 다른 회원에게 주어 보냈다.
윌리는 십일조 봉투가 담긴 가방을 옷 속에 넣고 콜웨지로 가는 기차를 타고 나흘간 여행을 했다. 그도, 함께 가는 회원도 가는 동안 긴장이 되고 겁이 났다. 둘은 기차에서 잠을 잤고 푸푸 같은 음식을 살 때에만 역에서 내렸다. 카사이족들에게 여전히 적대적인 콜웨지로 들어가는 것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니파이가 놋쇠판을 찾아온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과 십일조를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마침내 콜웨지에 도착한 그들은 지방부 회장의 집을 찾아갔고, 그는 그들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다. 며칠 후 자이르 킨샤사 선교부의 새로운 지도자인 로베르토와 지니 타벨라가 그곳을 방문했고, 지방부 회장은 그들을 윌리와 그의 여행 동반자에게 소개했다.
“콜웨지 지부에 다니던 회원들이십니다.” 지방부 회장이 설명했다. “사태 이후 루푸타로 이사하셨는데 이곳에 와서 회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셨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타벨라 회장이 말했다. “루푸타에서 오셨다고요?”
윌리는 타벨라 회장에게 그간의 여정과 거리를 이야기하고 십일조 봉투를 꺼냈다. “루푸타에 있는 회원들의 십일조입니다. 어디에 내야 할지 몰라서 그간 따로 떼어 놓고 생활해 왔습니다.”
타벨라 회장 내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선교부 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신앙입니다.”
윌리는 넘치는 기쁨과 평안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친 루푸타의 성도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타벨라 회장은 그들에게 인내하도록 권고하며 말했다. “돌아가시면 루푸타에 계신 모든 분께 제 사랑을 전해 주십시오. “그분들은 지금 영원하신 아버지께 축복을 받고 계십니다. 그런 신앙을 본 적이 없기에 저는 그것이 축복임을 압니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자신의 보좌 중 한 명을 루푸타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제 보좌가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주석 및 출처 인용은 복음 자료실에서 전문을 참조한다.
여기가 내 선교부야
1997년 5월, 수년간의 전쟁과 정치적 혼란 끝에 자이르 정부가 붕괴했다. 30년 넘게 나라를 지배했던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그는 정권의 종말을 막을 힘이 없었다. 자이르 동쪽에 이웃한 국가인 르완다의 군대가 자국의 내전에서 추방된 반란군을 색출하러 자이르에 들어왔다. 곧이어 다른 동아프리카 국가들도 자이르에 들어왔고, 결국 다른 군대들과 힘을 합해 약해진 세코 대통령을 축출한 뒤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국가명을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이곳에서 분쟁이 격화되는 동안에도 교회는 기능을 멈추지 않았다. 콩고 민주 공화국에는 약 6천 명의 성도들이 살고 있었다. 킨샤사 선교부에서는 17명의 전임 선교사가 다섯 개의 나라를 담당했다. 1996년 7월에는 이 지역 부부 몇 쌍이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성전에서 성전 축복을 받기 위해 2,8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여행했다. 몇 달 후인 11월 3일에 교회 지도자들은 콩고 민주 공화국의 첫 스테이크이자 아프리카 최초의 프랑스어권 스테이크인 킨샤사 스테이크를 조직했다. 선교부에는 5개의 지방부와 26개의 지부도 있었다.
루푸타의 윌리 비넨은 이제 스물일곱 살이었고, 자국의 불안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선교부 회장단의 보좌인 은탐브웨 카브위카에게 이 소망을 전하자 실망스러운 소식이 돌아왔다.
카브위카 회장은 말했다. “형제님, 선교사로 봉사하려면 25세가 넘지 않아야 합니다. 형제님을 선교사로 부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후 그는 윌리를 위로하려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형제님은 아직 젊어요. 학교도 다니고, 결혼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윌리에게는 그런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는 가슴에서 실망감이 솟구쳤다. 나이 때문에 선교사로 봉사할 수 없다는 것은 불공평해 보였다. ‘나에게 그 모든 일이 일어났는데 왜 예외를 둘 수 없는 걸까?’ 그는 애초에 왜 주님께서 자신에게 선교사로 봉사하도록 영감을 주셨는지 궁금했다. 그는 그 속삭임을 따르기 위해 공부하고 일할 기회도 미루었는데, 도대체 무얼 위해서였단 말인가?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런 일로 괴로워할 순 없어. 하나님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는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 머물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행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 1997년 7월에 루푸타 성도들은 공식 지부로 조직되었다. 재정 서기와 지부 선교사로 부름받은 윌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교회를 세우도록 주님께서 자신을 준비시키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 여기가 내 선교부야.’ 그는 생각했다.
루푸타 지부의 다른 성도들 몇 명도 지부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윌리는 일주일에 사흘은 농작물을 돌보았다. 다른 날에는 집집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곤 했다. 그런 후에는 하나밖에 없는 바지를 빨았다. 다음 날 깨끗하게 입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이 어떤 동력으로 그렇게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특히 빈속으로 나가야 할 때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복음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자신이 누리는 축복을 자신의 종족,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조상이 누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선교 사업은 힘든 일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부 선교사들을 위협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선교사들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마을 사람들은 몰몬경을 없애기 위해 모이기도 했다. 그들은 말했다. “몰몬경을 불태웁시다. 그러면 교회가 사라질 테니.”
그러나 윌리는 주님께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다. 한번은 그와 동반자가 어느 집 문을 두드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악취가 풍겼다. 안에서 자신들을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내가 좀 아픕니다.”
윌리와 동반자는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고, 몹시 야윈 듯한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기도해도 될까요?” 그들이 물었다.
남자는 그렇게 해 달라고 했고, 선교사들은 그의 병이 사라지도록 축복하는 기도를 드린 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 집으로 가니 밖에서 남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들이 기도한 후로 그는 몸이 나아져 있었다. 그는 뛸 듯이 기뻤다.
그는 아직 교회에 들어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준비된 사람들도 있었다. 매주 윌리와 다른 선교사들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들도 만났는데, 그들은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싶어 했다. 어느 토요일에는 30명이나 침례를 주기도 했다.
루푸타의 교회는 이제 막 성장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주석 및 출처 인용은 복음 자료실에서 전문을 참조한다.
주님은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
2006년 초, 콩고 민주 공화국의 윌리 비넨은 수도 킨샤사로 이사해 전기 공학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는 지난 13년 동안 킨샤사에서 약 1,500킬로미터 떨어진 루푸타 마을에서 농부로 일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지부 선교사로 봉사하는 동안 침례주었던 릴리라는 젊은 여성과 결혼해 있었다. 그들은 두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지난 2년 동안 릴리와 아이들은 킨샤사에 살고 있었다. 그동안에 윌리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다시 학교에 다니는 데 필요한 돈을 벌었다.
3월 26일, 선교부 회장인 윌리엄 메이콕은 루푸타에 첫 지방부를 조직하고 윌리에게 지방부 회장으로 봉사하도록 부름을 주었다. 윌리는 자신이 없었지만 이사 계획을 단념하고 부름을 받아들였다. 얼마 후 릴리와 아이들은 루푸타로 돌아왔고, 윌리는 가족과 함께 지내며 새로운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주석 및 출처 인용은 복음 자료실에서 전문을 참조한다.
성전에서 천국을 찾다
2008년 6월, 콩고 민주 공화국 루푸타의 윌리와 릴리 비넨은 세 자녀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에서 북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떨어진 음부지마이 공항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킨샤사로 날아가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긴 여행이었지만 아이들은 즐겁고 행복했다. 비넨 가족은 영원히 함께 인봉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 성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윌리가 루푸타 지방부 회장으로 부름받고 가족이 다시 함께 생활한 지 2년이 지났다. 릴리는 루푸타로 돌아온 후 어린이집을 열었다. 어린이집은 즉시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는 곧 초등학교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윌리는 전기 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을 접어 두고 현지 병원에서 간호사 연수를 시작했다. 그는 이 일과 부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고, 지방부 회장단이 새로운 책임을 배우고 현지 지도자들을 훈련하고 성도들을 방문할 때 보좌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최근 윌리의 지방부 회장단은 수도관을 통해 루푸타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교회의 3개년 자금 원조 프로젝트의 지원 임무를 추가로 맡았다. 루푸타의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여러 웅덩이와 샘물, 배수로에 의존해 물을 얻었다. 여성과 아이들은 하루에 두 번씩 2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이러한 장소 중 한 곳으로 갔으며, 들고 간 용기에 물을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이런 수원에는 해로운 기생충이 우글댔으며, 누구든 이 오염된 물로 인해 죽은 누군가(대부분 어린아이)를 알고 있었다. 여성들은 수원을 오가면서 성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수년간 콩고 민주 공화국의 인도주의 단체인 ADIR은 루푸타와 그 주변에 거주하는 26만 명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물 공급원은 34킬로미터 떨어진 산비탈 곳곳에서 솟아나는 샘이었는데 ADIR은 송수관 건설에 필요한 260만 달러가 없었다. 그런데 이 단체의 관리 책임자가 후기 성도 자선회에 관해 듣고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해 현지 인도주의 선교사들에게 연락을 해 왔다.
1996년 제일회장단의 지시에 따라 창설된 후기 성도 자선회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백 건의 교회 인도주의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이 자선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필요에 따라 다양했지만 최근에는 예방 접종, 휠체어, 시력 관리, 육아, 깨끗한 물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루푸타에 송수관이 필요하다는 전갈을 받은 후기 성도 자선회는 필요한 자금을 기부했고, 루푸타와 인근 지역 사회의 자원자들은 노동력 제공에 힘을 보태기로 합의했다.
지방부 회장단인 윌리와 그의 보좌들은 ADIR, 그리고 현장 감독으로 고용된 현지 후기 성도 다니엘 카자디와 함께 일하는 한편, 자신들도 이 프로젝트에 인부로 자원했다.
그런데 이제 요하네스버그에 내린 비넨 가족은 바쁜 생활을 잠시 떠나 주님의 집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족이 공항으로 나와 그들을 맞이했고, 성전 참여자 숙소까지 차로 그들을 데려다주었다. 이후 윌리와 릴리는 성전에 들어가 교회가 후원하는 돌봄 센터에 아이들을 맡기고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루푸타를 떠나기 전 비넨 부부는 교회의 성전 준비 책자인 『높은 곳에서 주어짐』을 공부하고 사도 제임스 이 탈매지의 저서인 『The House of the Lord』[주님의 집]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도착한 그들은 모든 것이 새롭고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약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몸짓으로 알아냈다.
나중에 인봉실에서 세 자녀와 다시 만난 그들은 무척 기뻤다. 흰옷 차림으로 인봉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천사처럼 보였다. 윌리는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신과 가족이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바로 앞에 계신 것 같았다.
“우와.” 그가 말했다.
릴리도 천국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가족이 영원히 하나로 결속되었음을 알자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죽음조차도 그들을 갈라놓지 못할 것이다.
주석 및 출처 인용은 복음 자료실에서 전문을 참조한다.
깨끗한 물의 기적
2010년 9월, 콩고 민주 공화국 루푸타의 주민들은 교회가 후원하는 깨끗한 물 송수관 설치를 거의 완료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방부 회장인 윌리 비넨은 기자와 이야기하면서 송수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전기가 없어도 살 수 있어요. 하지만 깨끗한 물이 없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기자가 알아차렸든 그렇지 않든 윌리는 평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고 있었다. 전기 공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루푸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계획은 바뀌었고, 그는 전기 없이도 잘 해냈으며 성공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 지역의 모든 가족은 수인성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결과를 겪었다. 교회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찬식에 사용할 깨끗한 생수를 구입하는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이제 조금만 더 일하면 루푸타의 삶은 곧 바뀔 터였다.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부터 시내와 주변 지역에 있는 모든 동네가 송수관 작업 날짜를 배정받았다. 작업일이 되면 프로젝트 담당 단체인 ADIR의 트럭들이 아침 일찍 해당 동네에 도착하여 자원자들을 태워 공사 현장으로 데려갔다.
지방부 회장인 윌리는 모범적인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의 동네가 작업을 맡은 날이면 그는 간호 업무를 제쳐 두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루푸타와 깨끗한 수원 사이에는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언덕과 계곡들이 있었다. 송수관은 중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자원자들은 물이 제대로 흐르게 하기 위해 도랑을 파고 정확하게 도관을 묻어야 했다.
윌리와 자원자들은 모든 것을 손으로 파냈다. 도랑은 폭이 약 45센티미터, 깊이는 약 1미터가 되어야 했다. 어떤 곳은 모래땅이어서 작업이 빨리 진행되었다. 그러나 또 어떤 곳에서는 나무뿌리와 돌들이 뒤엉켜 있어서 고된 일을 하기도 했다. 자원자들은 그저 덤불숲에 불이 나거나 사람을 물어뜯는 곤충의 서식처를 건드려 작업이 더뎌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날에는 거의 150미터에 달하는 도랑을 팔 수 있었다.
루푸타 지방부의 성도들은 동네마다 일정하게 할당받은 작업 외에도 특별 교대 작업을 했다. 특별 작업을 하는 날에는 교회의 남성들이 그 날짜에 배정된 자원자들과 함께 도랑을 팠으며, 상호부조회 여성들은 작업자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
성도들이 프로젝트에 헌신했기에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지역의 사람들은 교회를 회원들뿐만 아니라 더 넓은 지역 사회를 돌보는 기관으로 여겼다.
2010년 11월 송수관 공사가 끝나자, 물이 도달하는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루푸타로 왔다. 루푸타에는 도관에서 나오는 물을 저장하기 위해 버팀대를 높게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물탱크를 얹었다. 하지만 송수관이 정말로 물탱크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물을 날라 올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윌리도 의구심이 들었다.
그때 수문이 열렸고, 물탱크로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가 모두의 귀에 울렸다. 군중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각각 여러 개의 수도꼭지가 장착된 수십 개의 작은 콘크리트 급수소는 이제 루푸타 전역에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시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축하 행사를 개최했다. 축제에는 루푸타와 인근 마을에서 1만 5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부와 부족의 고위 인사, ADIR 임원, 교회의 아프리카 남동 지역 회장단 일원도 귀빈으로 참석했다. 물탱크 중 하나에는 하늘색으로 다음 글귀가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손님들이 도착하여 특별 제작된 정자 아래 앉자, 청소년 후기 성도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찬송가를 불렀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군중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잠잠해지자, 윌리는 교회의 현지 대표자로서 마이크를 입에 대고 청중에게 연설했다. “예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처럼 오늘 루푸타에 물이 온 것도 기적입니다.” 그는 말했다. 그는 군중에게 교회가 지역 사회 전체를 위해 송수관을 후원했다고 말하며, 모두에게 송수관을 잘 사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왜 교회가 루푸타 같은 곳에 그토록 관심을 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간단하게 답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주석 및 출처 인용은 복음 자료실에서 전문을 참조한다.
루푸타에서 함께 기뻐하며
2011년 10월 2일, 콩고 민주 공화국 루푸타 집회소의 휘발유 발전기에 시동이 걸렸다. 건물 안에는 윌리와 릴리 비넨을 포함한 약 200명의 성도들이 예배실에 설치된 텔레비전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후면 교회의 제181차 반연차 대회의 일요일 저녁 방송이 시작될 터였다. 방송은 프랑스어로 통역되는데, 이는 전 세계 성도들이 대회를 시청할 수 있는 51개 언어 중 하나였다. 루푸타의 교회 회원들은 시온의 스테이크 회원으로서 함께 모여 첫 번째 연차 대회를 시청할 예정이었다.
3개월 전에 루푸타 스테이크가 조직되었다는 사실은 이곳에서 교회가 급속히 성장한 것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비넨 가족이 성전에서 인봉된 해인 2008년, 루푸타에는 1,200여 명의 후기 성도가 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곳에는 전임 선교사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3년 동안 윌리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충실한 지부 선교사들과 협력한 끝에 지방부 성도들의 수를 두 배 이상 늘려 놓았다. 이곳에 깨끗한 물을 공급한 교회의 역할도 분명 여기서 한몫을 했다. 심지어 이 지방부에서는 콩고 민주 공화국과 아프리카, 그리고 세계의 여러 지역으로 34명의 전임 선교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칠십인 정원회의 폴 이 컬리커 장로와 알프레드 켱구 장로가 윌리를 새로운 스테이크의 회장으로 부르자 그는 정말 깜짝 놀랐다. 루푸타 교회에는 스테이크 회장으로서 유능하게 봉사할 수 있는 경험 많은 신권 지도자들이 여럿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이끌 차례 아니었나?’
스테이크가 조직된 6월 26일에 윌리는 컬리커 장로와 켱구 장로를 도와 스테이크의 청년 자매와 형제 열다섯 명에게 전임 선교사 부름장을 배부했다. 그 후에 윌리는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고 미소를 지었다. 종족 분쟁과 유혈 사태로 고향에서 내몰렸던 20년 전, 그는 주님을 위해 전임 선교사로 봉사할 기회를 빼앗겼었다. 하지만 수년간 루푸타에서 헌신적으로 교회에 봉사한 덕분에 그는 자신이 갖지 못했던 기회를 자라나는 세대의 성도들에게 줄 수 있었다.
대회의 방송이 시작되자, 윌리는 의자에 편하게 기대어 연사들의 말씀을 들었다. 보통 몬슨 회장은 대회를 시작할 때 첫 번째 연사로 말씀했지만 건강 문제 탓에 컨퍼런스 센터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지체되었다. 하지만 중간 찬송이 끝난 후, 그는 연단으로 다가가 대회에 참석한 성도들을 환영하며 쾌활한 음성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전했다.
그는 말했다. “분주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더 빨리 흐르는 듯 느껴지는데, 지난 6개월 역시 그랬습니다.”
몬슨 회장은 엘살바도르 성전의 헌납식과 미국 남부 애틀랜타 성전의 재헌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성전 건립은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신축될 성전 몇 곳을 발표하겠습니다.”
윌리는 귀를 기울였다. 최근 루푸타의 교회 지도자들은 성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루푸타에서 열린 첫 번째 스테이크 대회에서는 성도들이 주님의 집에 참석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집중해서 전해진 말씀이 많았다. 루푸타에서는 비넨 가족 외에는 요하네스버그 성전에 가 본 성도가 거의 없었다.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는 여권을 취득하기가 비교적 수월했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기 위한 여행 비자는 그렇지 않았다. 즉, 콩고 민주 공화국의 많은 성도들은 여권 만료를 걱정하며 속절없이 기다린 끝에야 겨우 비자를 받고 성전에 갈 수 있었다.
몬슨 회장이 발표한 첫 번째 성전은 유타주 프로보시의 두 번째 성전이었다. 최근에 프로보시의 유서 깊은 태버내클이 사고로 불이 붙어 불길이 외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린 터였다. 이제 교회는 이 건물을 다시 지어 주님의 집으로 용도를 변경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몬슨 회장은 이어서 말했다. “저는 또한 기쁘게 다음 지역에 세워질 새로운 성전을 발표합니다. 콜롬비아 바랑키야, 남아프리카 더반, 콩고 민주 공화국 킨샤사, …”
“킨샤사”라는 말이 들리기 무섭게 윌리와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나 환호했다. 모두가 정말 깜짝 놀란 소식이었다. 곧, 콩고 성도들은 여행 비자나 여권 만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될 터였다. 선지자의 이 간결한 발표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때까지 교회가 콩고 민주 공화국에 성전을 지을 계획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나 암시는 전혀 없었다. 언젠가 주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집을 세우실 것이라는 희망만 있었을 뿐이다.
이제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석 및 출처 인용은 복음 자료실에서 전문을 참조한다.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세요
2017년 5월 28일, 루푸타의 윌리 비넨은 자신의 와드 집회소에서 간증을 전하기 위해 일어섰다. 그날은 그의 가족이 그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적어도 한동안은 말이다. 그와 릴리는 최근 제일회장단으로부터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 있는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선교부의 지도자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청년 시절 전임 선교사로 봉사할 기회를 놓친 윌리는 언젠가 릴리와 함께 선교사로 봉사할 날이 오기를 항상 소망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부름이 그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년 전,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엘 앤더슨 장로는 킨샤사 성전의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콩고 민주 공화국에 왔었다. 그때 앤더슨 장로와 아내 캐시는 루푸타에서 북쪽으로 약 145킬로미터 떨어진 도시인 음부지마이로 가서 그 지역의 성도들을 만났다. 윌리는 앤더슨 장로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앤더슨 장로는 방문한 지 몇 달이 지난 후 영상 통화로 윌리와 릴리를 놀라게 했다. 그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임무를 주셨다고 말하고는 그들의 생활과 직장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런 다음 그는 릴리에게 “고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주님을 섬기는 데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릴리가 대답했다. “네, 기꺼이 가겠습니다.”
약 일주일 후, 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 회장은 부부에게 선교부 지도자로 봉사하라는 부름을 주었다. 그들은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부름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새로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께서 어려운 일을 요구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그들은 그분께서 마련하신 봉사의 기회에 온전히 헌신하고 싶었다.
릴리는 생각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만이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시며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게 자격을 갖춰 주실 거야.’
다섯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의 네 자녀는 그 소식을 잘 받아들였다. 그러나 윌리와 릴리의 부름이 발표되자, 루푸타의 성도들은 슬픈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윌리는 20년 넘게 루푸타에서 교회의 번영에 힘을 보탰고, 난민 성도들로 이뤄졌던 작은 그룹은 번성하는 시온의 스테이크로 성장했다. 성도들은 그를 전 지방부 회장이자 스테이크 회장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회복된 복음은 그들에게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여기도록 가르쳤으며, 따라서 윌리와 릴리와 그 자녀들은 그들의 가족이었다.
윌리는 와드 회원들에게 간증을 전하면서 그들에 대한 엄청난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았다. 릴리와 합창단원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도 그는 눈시울을 적시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서 그가 기대한 대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었다. 학업, 전임 선교사 봉사, 직장 등, 그가 계획을 세울 때마다 일이 일어나 그를 다른 방향으로 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주님께서는 항상 자신을 위한 계획을 갖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임이 끝난 후, 마침내 윌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는 자신이 뭔가 특별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자신이 대양의 물 한 방울만큼이나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계획이 더욱 분명해지고 명확해짐에 따라 주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며 당신과 함께하도록 촉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릴리, 그리고 자녀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 뒤 다음 봉사 지역으로 그들을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윌리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절대 서두르면 안 돼요.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세요.”
주석 및 출처 인용은 복음 자료실에서 전문을 참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