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적 모임
말씀 및 토론: 키아론 장로 부부와 청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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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및 토론: 키아론 장로 부부와 청년 성인

전 세계 청년 성인 영적 모임

2026년 2월 1일 일요일

패트릭 키아론 장로: 오늘 저녁 이곳에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종교 교육원 100주년을 기념하고, 그 시간 동안 세미나리와 종교 교육원을 통해 변화된 수많은 삶을 떠올려 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오늘 여러분이 들어오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거대하고 웅장한 장소이지만 분위기는 참 아늑한 것 같습니다. 이곳의 아늑한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카페 분위기가 나는 조명도 설치했는데 눈치채셨는지요.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 시간을 무척 기다려 왔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몇 분은 교통 체증을 겪었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자리해 주셨습니다.

제니퍼 시 키아론 자매: 맞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서 느껴지는 이 열기에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하신 여러분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배당이나 집, 또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이 모임을 시청하며 구주와 더 강한 유대감을 쌓고자 하시는 분들의 모습도 마음속에 그려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며,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몇 주 전에 우리는 여러분 또래의 청년 두 그룹을 만날 멋진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도 몇 분이 함께해 주셨군요. 우리는 자리에 앉아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두 그룹과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들은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왔고 우리는 그에 대한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다섯 나라를 대표하고 있었는데요, 미국, 멕시코, 노르웨이, 카리브해의 퀴라소 섬, 그리고 콩고 공화국에서 온 청년들이었습니다.

키아론 장로: 이제 영상에 나온 질문 다섯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각 질문 사이에 저희가 한두 가지 정도 의견을 덧붙일 예정입니다. 그럼 첫 번째 영상을 함께 보시죠.

장애물을 인식하고 극복함

청년 성인: 청년 성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다가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지 못하도록 스스로 자신의 앞길에 놓아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키아론 장로: 청년 성인들이 겪는 장애물이라고 하면, 이 삶을 애초에 성공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공평한 기준이 적용된 학교 시험처럼 여기는 사고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쎄요. 그런 사고방식은 우리가 필멸의 시간과 영생을 대하는 방식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님의 말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시험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점수를 매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학교에서 치르는 방식의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계를 넓히고 배울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누군가 영원한 성적표를 들고 점수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장애물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우리를 위해 닦여진 길에 관한 것입니다. 때로는 아름답고 멋진 경험이나, 때로는 매우 힘들고 우리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경험들이 기다리는 길입니다.

키아론 자매: 자기 의심과 두려움이라는 장애물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리는 그 내면의 음성 말입니다. 그것은 정말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낙담하게 만드는 음성, 여러분이 실패자라고 말하는 음성, 여러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 음성 등 그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시험에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소망은 있지만 아직 미혼이거나, 이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똑같은 고난, 똑같은 죄, 똑같은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음성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난 부족해, 절대 나아지지 않을 거야, 결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거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존재가 될 수 없어.” 저는 이것이 장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그런 음성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머릿속에 들리는 구주의 음성은 어떤가요? 그것은 제가 방금 묘사했던 냉소와 비난, 수치심, 절망의 음성과는 전혀 다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구주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보십시오. 저는 이 구절을 정말 좋아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때때로 여러분의 머릿속에 낯선 이의 음성, 즉 도둑과 강도의 음성이 들릴 때가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을 알지 못하고, 아끼지도 않으며, 사실은 여러분을 파멸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자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그런 낯선 이와 도둑과 강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늘 격려해 주시고, 늘 사랑해 주시며, 늘 희망을 주시는 선한 목자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그분은 우리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필요하다면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음성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궁극적인 대가를 치르셨으며, 사실상 우리 한사람 한 사람과 성약으로 결속되신 구주의 음성입니다. 그러므로 낯선 이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흡족히 취하십시오.

자, 이제 다음 영상을 보겠습니다.

복음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을 도움

청년 성인: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제게 기대하신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서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시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활동이나 매일 영을 느끼는 일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친구를 보게 될 때,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그들이 틀린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키아론 자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여러분은 “내가 복음대로 생활하는 방식이 훨씬 더 낫거나 올바른 방법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비치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결국은 항상 사랑과 시간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친구는 여러분의 사랑을 느껴야 하고, 여러분이 그들에게 필요한 시간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죠.

어쩌면 여러분의 친구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단계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그 친구의 안전한 피난처이며, 친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든 상관없이 친구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끼며 도와줄 사람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친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친구가 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는 자신이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확신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친구가 지금보다 영을 더 강하게 느꼈던 때나 지금보다 더 충실하게 복음대로 생활했던 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친구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차이를 느끼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십시오.

“흠, 내가 기대했던 말을 하지 않네? 내가 듣고 싶은 답을 주지 않으니 이 대화는 그만할래."라는 식의 메시지를 주지 않으면서 솔직하게 마음과 마음으로, 영과 영으로 나누는 대화 말입니다.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대할 때도,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키아론 장로: 그렇습니다. 칼 형제는 복음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친구들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그들이 현재 어느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각자의 상황에 맞춰 그들이 계속 참여하도록 노력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교회 활동이라든지 교회에서 활동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개종자들에게는 참 흥미롭게 들리는 표현이지요. 우리는 그들이 계속 참여하고 활동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부름이 있다면, 그 부름에 응하고 성실히 임하게 하십시오. 가르치고, 성역을 베풀며, 힘들어하는 다른 이들을 살피게 하십시오. 저는 몰몬경이 리하이와 그의 가족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것, 니파이가 가서 행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 안에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살아 있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조금 약해졌다 해도, 그것은 우리를 다시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저는 몬슨 회장님이 구주에 관해 하신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회장님은 구주께서 항상 바쁘게 움직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 모범을 훌륭하게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 영상을 보겠습니다.

불안 속에서도 평안을 느낌

청년 성인: 저는 불안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고 늘 걱정을 하다 보니 행복해지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구주 안에서 더 큰 평안을 느껴서 제 삶에 기쁨이 더 자주 찾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 분의 식견을 듣고 싶습니다.

키아론 장로: 훌륭한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 짐이 더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의학적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두려움 및 불안과 관련하여 서로를 돕거나, 의학적 도움을 받는 일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경전에서 불안함과 “크나큰 염려”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이야기한 사람은 야곱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불안이 여러 면에서 저의 불안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의 불안은 외부를 향해 있습니다. 그의 불안은 그의 백성과 그들의 복리에 대한 것입니다. 반면 제 불안은 거의 대부분 제 자신과 내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일을 망치진 않았는지 따위에 쏠려 있습니다. 제가 거듭 배웠고, 계속해서 다시 배워야 할 사실은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제 불안이 걷힌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안위를 생각하기만 해도 제 불안이 걷히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아예 사라져 버립니다. 종종, 그렇게 불안이 가버리곤 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면, 그 안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야곱처럼 되어서 제 불안이 훨씬 더 외부로 집중되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는 엄청난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키아론 자매: 현 시대를 사는 우리는 불편함이나 고통을 느끼면 즉시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샤워를 하려고 서 있는데 물이 너무 차갑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손잡이를 왼쪽으로 살짝만 돌려도 물이 금방 따뜻해집니다. 이런 경우는 많습니다. 우리는 편안함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편안하기를 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편안함을 원하고 불편함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알 수 없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불편한 순간들과 불편함이 지속되는 시기들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확실성도 의연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몇 주, 심지어는 몇 달 동안 마음이 불안하거나 우울할 수도 있다는 점을 예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행복과 슬픔이 필요합니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런 경험과 감정들이야말로 삶을 그토록 흥미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키아론 장로: 야곱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아까 영상에서 야곱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야곱서 4장 2~4절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판에 몇 마디 말을 기록할 수 있나니, 이것은 우리에 관한 지식, 곧 그들의 조상들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우리의 자손들과 또한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줄 것이라-

이제 이 일로 우리가 기뻐하고,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과 우리의 자손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 보고, 슬픔이나 경멸이 아니라 기쁨을 가지고, 그들의 첫 부모에 관하여 배우기를 바라면서, 부지런히 수고하여 이 말씀들을 판에 새기노라. …

이는, 바로 이러한 의도로 우리가 이 일들을 기록하였음이니, 곧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았고, 그의 오시기 수백 년 전 우리가 그의 영광에 대한 소망을 가졌음을 그들로 알게 하려 함이라.”

제가 이 구절에서 정말 좋아하는 점은 야곱이 항상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기에 나온 것처럼 다음 세대의 사람들까지도 생각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범위를 확장시킨 것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야곱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대가 그에 관한 기록을 읽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키아론 자매: 저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불안을 느끼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세상을 내다보며 혼란을 목격하고 뉴스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우리 중 일부는 그러한 혼란과 불의와 불공평의 시기를 몸소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할까요? 우리의 영은 다툼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다투는 정신을 가진 자는 [당신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영은 온화함과 온유함, 사랑과 용서와 평안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이 삶의 혼란과 불의를 겪는 것을 볼 때, 우리 영은 몹시 힘겨워합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구주께서는 이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그분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을 압니다. 혼란과 불의가 만연할 것입니다. 전쟁과 재난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담대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그분이 “세상을 이기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주와 연결되어 그분이 주시는 평안을 우리 삶에 끌어오기에 충분할 정도로 소셜 미디어와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분의 평안은, 그분께서 세상을 이기셨고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불공평과 불의에 대한 대가를 이미 치르셨다는 사실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을 짓누르는 짐과 걱정을 내려놓고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분은 그것을 감당하실 만큼 충분히 강하신 분입니다.

이제 다음 영상을 보겠습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기쁨을 찾음

청년 성인: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청년 성인들은 어떻게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키아론 자매: 이에 대한 답은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풍성하고 사랑 넘치는 마음에 대한 신앙과 신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미래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더 많이 신뢰할수록, 우리 자신을 그분의 손에 온전히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좋은 일들을 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가 기쁨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마음에 굳건함과 평안이 깃들며, 주님 앞에서의 확신이 생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또한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을 더 많이 믿고 신뢰할 때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항상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힘든 일들이 닥칠 때 우리는 그것에 놀라거나 경로를 이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로 더 온전히 돌이켜 이렇게 여쭈어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이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배우길 바라십니까?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분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말입니다.

키아론 장로: 저도 그 말씀이 참 좋네요. 때때로 미래가 걱정될 때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삶은 좋은 시기와 힘든 시기가 각기 다른 비율로 뒤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산 아래를 다시 내려다보기 전까지는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알 수 없다”고요. 제 마음에 너무 와닿는 멋진 비유입니다. 물론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늘 벅차게 보이지만, 뒤를 돌아보며 “와, 내가 정말 멀리 왔구나”라고 말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키아론 자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수많은 결정을 앞두고 있고, 수많은 갈림길이 놓여 있는 불확실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건 사실이지만,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예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 지상에 오기 전에 하늘 가족과 함께 살았을 때 특별한 목적과 사명을 위해 예임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성공하도록, 위대해지도록, 주님의 위대한 사업을 돕도록 예임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나는 네가 해야 할 일을 갖고 있도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저를 위해 일을 마련해 두셨으며, 우리는 위대함을 위해 예임되었습니다.

키아론 장로: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오늘 저녁 저희가 드리고 싶은 권고 중 하나는 이런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자란 분들에게는 위대함을 위해 예임되었다는 개념이 너무나도 익숙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늘 우리 삶의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잊은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인 사실입니다.

저희가 약혼했을 때, 지금으로 말하자면 불확실한 미래에서 기쁨을 찾는 것에 대해 한 현명한 지인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쁨은 한 숟갈씩 찾아와요.” 사실은 “한 찻숟갈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저희 마음속에 깊이 남은 참 사랑스러운 이미지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기쁨이란 아름다운 아침 같은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기쁨은 무언가를 살짝 맛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친구와 함께하는 순간 같은 것이지요. 혹은 그게 무엇이든 말입니다. 기쁨은 그렇게 한 숟갈씩 찾아옵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제가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던 또 한 가지는 기쁨을 찾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연습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노력과 수고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일주일에 한 시간은 기쁨을 찾는 데 진정으로 집중해 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바로 일요일 성찬식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일주일 중 가장 기쁜 순간으로 만들어 봅시다. 그러면 그 기쁨이 그 시간으로부터 퍼져 나가기를 소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 한 시간을 일주일 중 가장 기쁜 시간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얼마나 큰 손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성찬식 시간을 경이롭고 놀라울 정도로 기쁜 시간으로 만드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물론 구주의 위대한 속죄의 은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겠지만, 그분이 무덤을 깨치고 나오신 일과 그것이 상징하는 모든 것, 그분이 여러분의 삶에서 거두어 가신 모든 짐을 생각할 때 분명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영상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이해하고 적용함

청년 성인: 우리는 어떻게 하면 속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우리 삶에 속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키아론 장로: 저는 26살 때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속죄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정말 깜짝 놀랐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속죄를 생각할 때 계획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먼저 자녀인 우리를 지극히 아끼시는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이 있습니다. 즉 배우고, 성장하고, 교류하고, 사랑하고, 신앙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죄가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실수를 범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당신의 소중한 아들을 보내셔서 “바라보면 눈물이 나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러셨을까요? 언젠가 그분께서 설명해 주시겠지만, 우리는 그분이 그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이런 식으로 속죄를 생각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마련하신 행복의 계획의 목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맥락 안에서 저는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속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계획과 속죄를 통해 우리가 어떤 시련이나 도전도 이겨내고, 평안과 사랑과 기쁨뿐만 아니라 타인의 잘못과 죄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저는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걷게 됩니다. 눈물 뒤에는 가슴이 터질 듯한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분께서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셨다는 것에 대한 너무나도 벅찬 감사함입니다. 그것은 모든 눈물과 슬픔과 고통 뒤에 찾아오는 가장 아름다운 깨달음, 즉 환희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제 이해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하지만 속죄는 실재하고, 사실이며,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그것을 느낍니다.

키아론 자매: 평소의 제 자신보다 조금 더 인내하거나, 조금 더 절제하거나, 혹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때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삶의 매 순간 힘과 인도와 작은 격려를 받을 때마다, 그 모든 순간이 저에게는 구주의 속죄 희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자 힘입니다. 그분께는 자비의 권한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 동산과 십자가 위에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 고난을 겪으셨기에, 우리에게 그분의 힘과 권능을 빌려줄 수 있도록 아버지로부터 자비의 권한과 권능을 받으셨습니다. 그분께서 기꺼이 그렇게 하고자 하셨고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셨기에, 그분은 여러분에게 그분의 힘과 사랑과 소망을 부여하실 권한과 권능이 있으십니다.

키아론 자매: 모세서에는 하나님의 창조물이 무수하다고 나옵니다. 우리가 그 수를 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모세서 1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헤아려질 수 없느니라. 그러나 내게는 헤아려지나니, 이는 그것들이 것임이니라.” 오늘 밤 여러분은 백만 명 중 한 명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는 80억 명 중 한 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께 헤아림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알고 사랑하시며 여러분 삶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이름을 아시며, 길 잃은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 두고” 가실 것입니다. 그 한 마리가 여러분이든, 혹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누군가이든, 구주께는 99퍼센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원하시며, 모든 이가 안전하게 모일 때까지 그분의 사업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키아론 장로: 우리가 구주의 속죄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니파이후서 9장에 있는 이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즉 반드시 무한한 속죄라야만 하리니, 무한한 속죄가 아니고는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지 못할 것이라.”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속죄에 감사드리며, 오늘 밤 우리 모두가 속죄에서 흘러나오는 신앙과 권능과 이해력을 가지고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댈린 에이치 옥스 회장님의 말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주 짧습니다. 약 1분 30초 정도의 영상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약속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댈린 에이치 옥스 회장: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우리가 배우고, 모이고, 다른 사람을 고양할 가장 훌륭한 기회 중 하나는 종교 교육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음과 혼란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종교 교육원에서 여러분은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형성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되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성약의 길을 따라가도록 도와줄 사람들을 만나고, 데이트하고 결혼하려는 사람을 만나며, 구주처럼 사랑하고 이끌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성인 여러분, 꾸준히 종교 교육원에 참석하시기를 권유합니다. 또한 친구들도 이와 같은 축복을 누리도록 초대하십시오. 여러분이 종교 교육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구주의 평안과 기쁨 그리고 신성한 사랑을 가져다줄 것임을 약속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