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육 기구 종교 교육자 대회
길버트 장로와 함께하는 패널 토론


69:19

패널 토론: 학습자들에게 참여하도록 권유함

종교 교육자 대회 영적 모임, 2025년 6월 12일

편집자 주: 명확성을 위해 대본이 약간 수정되었습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메러디스 장로님, 감사합니다. 정말 힘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메러디스 장로님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그분의 힘과 확신을 느낄 수 있으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메러디스 장로님을 피클볼장에서 뵌 적이 있는데, 기독교 운동선수 연합에서는 그 결정을 재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오늘 토론할 주제에 대해 곧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메러디스 장로님께서 말씀하셨던 우리가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장로님께서는 말씀하시면서 그 부분을 명확하게 언급하셨고, 효율적인 교사가 학생들의 삶에 그리고 학생들이 배우는 방법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은 우리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크리스토퍼슨 장로님도 어젯밤 이 부분에 관해 말씀하셨고, 메러디스 장로님께서도 오늘 다시 언급하셨습니다.

저희는 여러분께 『구주께서 보여 주신 방법으로 가르침』에서 “부지런히 배우도록 권유한다”라는 섹션을 읽고 공부하고 이 워크숍에 오시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섹션에 따르면 우리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권유해야 합니다.

제가 드릴 이 이야기를 들어본 분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분들께는 미리 사과드립니다. 제 대학 시절 룸메이트는 이렇게 말했지요. “클라크, 네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긴 하거든. 하치만 처음 대여섯 번 정도 들을 때까지만 멋진 이야기라고.” 그래도 저는 오늘 이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제게는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르치면서 한 실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찰스 호텔에는 세 객실마다 하나씩 그림이 걸려 있는데, 그 그림에는 칠판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교수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에는 “더그는 자기 강의를 좋아해”라고 적혀 있고, 교수가 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자기 모습을 그려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종종 우리 역시, 사랑으로, 정말 학생들을 위한 진심이 담긴 사랑으로,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들을 나누고자 하지만, 그것이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행동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 시기에 저는 4년 동안 한 주제를 연구했고, 관련된 사례 연구를 집필했는데, 그 자료는 나중에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서 강의 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사례 연구는 나이트리더라는 회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사례 연구의 저자였고, 제가 학생들을 가르친 첫해에 아마 여덟 명의 교수진이 제 사례 연구를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기 말에 그 사례가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서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데이터를 보니까 제가 가르친 강의에서는 그 사례가 꼴찌 다음으로 효과적이지 못한 사례 중 하나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연구 저자였는데도 말입니다. 다른 교수진의 수업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사례 5순위 안에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제가 4년을 들여서 연구하고 집필한 사례 연구였음에도, 제가 가르쳤을 때는 사례 중 꼴찌 다음 순위를 차지하고, 다른 사람이 가르쳤을 때는 5위 안에 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마이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한테서 가까운 분께 답변을 들어볼게요. 로즈메리 자매님, 답변을 부탁해도 될까요? 제가 연구한 사례를 제가 직접 가르쳤는데도 왜 순위가 낮았을까요? “클라크 형제님이 잘못 가르쳐서겠죠”라고만 말하지 마세요.

자매 2(로즈메리): 장로님이 사례에 관해 설명하는 데 치중해서 학생들이 생각할 기회를 덜 주어서가 아닐까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로즈메리 자매님께서 뭐라고 답변하셨냐면, 제가 설명을 더 많이 하고 생각할 기회를 덜 줘서라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의견은 없으신가요? 순위가 그렇게 낮게 나온 걸 보면, 제가 무얼 잘못하고 있었을까요? 네, 저 뒤쪽 분, 말씀해 주세요. 저 덕분에 브라운 형제님이 운동을 하시네요.

자매 3: 학생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내용이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맞습니다. 학생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내용이었을 수 있었겠죠. 그러니까 심지어는, 제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학기에 제 동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클라크, 이 사례는 덧붙일 것이 별로 없는 사례예요. 단지 훌륭한 세 개의 질문만 하면 되는데, 너무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례에 관해 너무 잘 아는 바람에 학생들한테는 너무 복잡하게 돼버린 거죠.” 그래서 좀 속상하긴 했지만, 그분의 강의 계획대로 했더니 그 사례 연구의 순위가 당장 상위권으로 올라갔습니다.

때로 우리의 전문성과 지식이 학생들을 배우도록 권유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장애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지식을 활용하지 마시라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지런히 배우도록 권유하는 쪽으로 그런 지식이 활용될 수 있을까요? 오늘 네 분의 훌륭한 교사분들과 함께 패널 토론을 하겠습니다. 이분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권유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을 여기에 모시고, 한 분씩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제 바로 옆자리에 앉으시는 분은 케일리 메릴 자매님입니다. 메릴 자매님은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이스트하이 세미나리 교장이십니다. 그 옆은 존 힐턴 형제님입니다. BYU 고대 경전 교수이시죠. 그 옆에 앉으시는 분은 제넷 에릭슨 자매님입니다. BYU 교회 역사 및 교리 교수십니다. 그 옆으로는 네이트 피터슨 형제님입니다. BYU-아이다호 종교학 교수시죠.

그럼 토론을 시작하면서 어제 들었던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의 말씀에 관해 바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오늘 토론에 대한 주제를 알고 준비를 하면서 같이 이야기도 나눴었지요. 방금 메러디스 장로님도 그러셨지만,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의 말씀을 보면 자신의 배움에 책임을 지는 것과 평생 제자가 되는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제자가 됨에 있어서요.

에릭슨 자매님부터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그 질문을 봤을 때 어떻게 그 두 가지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젯밤 크리스토퍼슨 장로님 말씀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가르치는 방식에 그걸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제넷 에릭슨 자매: 길버트 장로님, 감사합니다. 영감을 주는 교사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BYU에서 가르치기 직전에, 아주 훌륭한 교사이신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님이 교육 주간에 오셔서 강의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장로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제가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는데,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에 그 학기에 바로 제 수업에 적용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삶이 주님의 영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우리가 지상에 온 이유라는 거죠. 그런 다음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의 참여를 권유하고, 학생이 답하기 위해 손을 들 때,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고자 하는 소망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 선택의지가 지닌 권능에 대한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최근에 들었던 BYU-아이다호 영적 모임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모임에서 한 훌륭한 교사분께서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길버트 장로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에게서 온 그 권능을 인식하고, 대적의 힘, 그리고 개인이 지닌 힘을 인식할 때, 저희는 기꺼이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께서 우리 삶에 관여하시도록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께 우리 자신의 삶을 내어 드리는 것, 그것이 제가 우리 학생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야말로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패커 회장님은 간증은 나눌 때 생겨난다고 간증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서두르시는 권능을 우리 삶에서 경험하고, 그분은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시어 변화와 개심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제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삶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향력이 임하게 하는 힘이 활성화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는 방법을 저도 아직 배우고 있긴 합니다만, 제 수업에 관해 이것저것 조언해 주시는 멘토들께 정말 감사를 느낍니다. 그분들은 항상 학생들이 선택의지를 사용해서 발견하고, 참여하도록 권유하게 하는 활동을 추천해 주셨고, 그렇게 할 때 학생들이 성신을 느끼게 됩니다. 학생들이 성신을 느끼면, 저도 성신이 학생들에게 그들 삶에 필요한 진리에 대해 아주 개인적으로 증거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선택의지를 사용해서 평생 제자가 되는 길에 오를 수 있게 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제가 이해하기에는 자매님께서 강조하시는 부분은 개인적인 행동, 즉 선택의지를 활성화하는 것이 이와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다른 분 있으신가요? 학습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것에 관해, 그리고 왜 그것이 평생 제자가 되도록 하는지 말씀해 주실 분 있으신가요?

존 힐턴 삼세 형제: 제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비유를 하나 말씀드릴까 합니다. 완벽한 비유는 아니긴 하지만요.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공되지 않은 양털을 가져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 주지요. “이건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경전과 같아요.” 그러고는 아주 훌륭한 통찰을 가르치는 멋진 수업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제가 이런 양털을 많이 준 거랑 같은 겁니다. 감촉도 좋고요. 학생들이 이걸 머리 위에 얹고 문밖으로 나서면, 바람이 불어서 양털이 떨어지고 말 겁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이 양털의 섬유를 한 방향으로 잘 빗어서 실을 자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실이 양털 코트가 될 수가 있고, 그걸 걸치고 걸어 나가면 이제는 날아가지 않겠죠.

이 비유를 해 드리는 이유는 이런 가공되지 않은 양털을 나눠주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코트가 생기길 바랍니다. 그 일은 학생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죠.

때로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교사로서 해야 할 훌륭한 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참 쉽지 않은 부분이죠. 그러나 학생들이 정말로 마음으로 이해하려면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이 가슴으로 옮겨가야 하죠. 그러니까 학생들이 행동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실상 그들이 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그러니까 학생들이 그냥 양털이 아닌 더 정제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거죠. 정제하는 과정을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존 힐턴 삼세 형제: 실제로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스스로 알게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냥 제가 계속 말해 주기만 하면 이걸 학생들 위에 얹어주는 것밖에 안 되겠죠. 그리고 교사로서 아주 잘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쉬워요.

실제로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얹어놓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내면으로 받아들이려면 스스로 행동해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말씀하세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네이트 형제님.

네이트 피터슨 형제: 길버트 장로님,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도 그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하셨죠. 선택의지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게 놀라울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배경에 맨날 있었던 그런 역할인 거니까요. 그런데 그 선택의지가 사실 정답이었던 거죠. 처음부터요.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도 발전하려면 선택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택의지가 작동하려면 진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수업에서 가르칠 수 있겠죠.

그렇지만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그게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진리를 가르쳐도 사탄은 때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사탄의 두 번째 공격은 학생들에게 선택의지를 사용하도록 권유하는 부분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제가 훌륭한 수업을 할 수도 있고, 진리에 대해 간증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 후에 그들에게 참여하고 주체가 되어 처음부터 갖고 있던 선택의지를 사용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다음 단계입니다.

그 과정에는 선택의지가 필요하고, 선택의지를 사용하려면 진리가 필요하고, 진리에는 권유가 필요하고, 그러면 또 발전하게 되죠.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케일리 자매님, 더 해주실 말씀 있나요?

케일리 메릴 자매: 어제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주제를 연결하셨던 방법이 인상 깊었는데요. 장로님께서는 그걸 성약에 연관지으셨죠. 왜냐하면, 평생 제자는 성약을 맺고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교실 안팎에서 선택의지를 사용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때가 왔을 때 선택의지를 사용해서 성약을 맺고 평생 살아가면서 그 성약을 지키는 방법을 알 수 있으니까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저도 장로님이 성약은 개인적인 것이며, 행동이 따라야 하고, 그 성약이 제자 됨을 측정하는 궁극적인 척도라고 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이 질문을 생각해오고 계셨으면 좋겠는데요.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도록 1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학습에 책임을 지는 것과 평생 제자가 되는 것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까? 그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크리스토퍼슨 장로님 말씀을 따르면,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가 선교부 지도자 세미나에서도 그 부분을 가르치고, 청소년 고문들한테도 가르치고, 우리 종교 교육자들에게도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학습에 책임지는 것과 평생 제자가 되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1분 동안 생각해 보시면서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여러분 생각을 적어보시고, 어제 어떤 것을 들었는지, 지금은 무엇을 듣고 있는지, 다른 어떤 생각이 나는지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적으시는 1분 동안 잠시 토론을 쉬겠습니다.

이제 앉으신 자리에 따라 두 분 또는 세 분이서 그룹을 지어서 느끼신 것을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혹은 집에서 방송을 보고 계셔서 옆에 아무도 없다면, 누군가를 찾아서 느낀 점을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느낀 것을 옆 사람과 나눠 주십시오. 여기 패널들도 토론을 하겠습니다만, 마이크 소리가 방해되지 않도록 해야겠네요. 다음 일 분 동안 통찰을 나누고 옆에 있는 분들에게 생각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청중의 대화]

이제 함께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길버트 가족이 이렇게 가정의 밤에서 원하는 때에 아빠의 마이크를 끌 수 있는 기능을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네요.

이 주제에 관해 무언가 나누고 싶으신 분이 있으면 일어나서 여기 계신 분들에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두세 분 정도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손을 들고 일어서시면 됩니다. 네. 여기 계신 분 말씀해 주십시오. 누가 손을 든 줄 생각했네요. 케미 앤더슨 자매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라운 형제님, 바로 뒤에 계십니다.

캐미 앤더슨 자매: 길버트 장로님,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이본과 저는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학생들이 매일 제자로 생활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시련을 겪을 때 신앙으로 제자로서 계속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건 단순히 힘든 일이 있을 때만 경전을 읽거나 기도를 하는 것 이상의 일이고, 학생들이 정말로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구주께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 주는 거니까요.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크든, 어떤 시련이든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그분이 도와주실 거란 걸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크라크 지 길버트 장로: 참 좋은 말씀입니다, 시련을 다른 관점을 제공하는 방편으로 쓴다는 개념이 참 흥미롭네요. 삶에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학생들이 이것을 기억할 것인가 자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힐턴 형제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것이 그냥 날아가 버릴 것인가, 아니면 계속 남아 있을 것인가 하고요.

다른 분 있으신가요? 손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네, 거기 계신 분 말씀해 주십시오.

형제 9: 이 주제는 제가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계속 생각해 오던 건데요. 제가 세미나리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베드나 장로님은 “신앙으로 배움을 추구함”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서 장로님께서는 우리가 영으로 가르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이야기하지만, 신앙으로 배운다는 것에 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니파이후서 33장을 사용해 가르치시면서,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전달할 수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건 우리 몫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려면 신앙으로 행해야 한다는 거죠. 교사로서 저희의 일은 단순히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죠.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배움은 남이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습득하는 것이니까요.

그때 그 메시지는 제게 계속해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교사로서 그 교훈을 적용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학생들 앞에 서서 근력운동을 하는 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강해지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행동하도록 권유해야만 하죠. 학생들은 반드시 스스로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경험에서 힘을 얻고, 그 힘은 학생들이 평생 제자로서 나아가며 삶에서 맞닥뜨릴 시련과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베드나 장로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부터, 우리의 진정한 책임은 학생들이 신앙으로 행동하도록 권유함으로써 어려움에 맞설 힘을 얻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그러니까 형제님 말씀은 그게 바로 평생 제자 됨과의 연관성이라는 거지요. 학기 중 수업에서 행동하는 능력이 밖에서도 계속 이어질 거라는 말씀이신 거지요.

형제 9: 그렇습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분만 더 들어볼까요. 네, 볼링브로크 형제님.

볼링브로크 형제: 제가 새벽 세미나리 코디네이터였을 때, 네바다 대학교 리노 캠퍼스 의과대학의 올해의 교사로 선정된 분이 세미나리 교사셨습니다. 저희는 준비, 참여, 적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볼링브록 형제님, 그렇지만 결국에는 이건 팔꿈치일 수밖에 없어요. 물론 토론하고 참여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이건 팔꿈치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해부학 교사인걸요. 그 사실에 관해서는 토론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분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이트 형제님이 하신 말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것과 진리를 적용하게 하는 것 사이의 균형에 관해서였지요. “그렇지만 학생들이 자기 팔꿈치를 움직여보면 더 잘 배우지 않나요?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고 인대도 보면서요.”

제 생각에는 종교 교육에서도 학생들이 직접 경험할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팔꿈치를 다쳐봤거나, 관심이 있다면, 팔꿈치를 더 잘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교사로서 우리는 남녀 간의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여 주신 것이며 가족은 창조주께서 그의 자녀들의 영원한 운명을 위하여 마련하신 계획의 중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스스로 그걸 발견해야 합니다. 팔꿈치를 움직여보게 해 주지 않고, 단순히 진리만 가르친다면 바람이 불어서 학생들로부터 그걸 다 날려버릴 겁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 이 질문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분들도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고, 단순히 강의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으시죠. 그런데 그러고 나서는 바로 가르치는 기술에 대한 방향으로 토론이 흘러갑니다. 그러고는 “이것을 왜 해야 하는가? 이렇게 참여하도록 하는 것과 평생 개인적으로 제자가 되는 것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접근법에 관해 이야기하겠지만, 그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시도록 권유합니다. 부디 더 고귀한 이 목적, 즉 애초에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히 배우도록 권유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준비를 하고 수업에 오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세션을 위한 준비로 부탁드린 것이 있었지요. 『구주께서 보여 주신 방법으로 가르침』에서 “부지런히 배우도록 권유한다”를 읽고, 제가 1월에 했던 “이는 능력이 그들에게 있고”라는 말씀을 읽고, 크리스토퍼슨 장로의 영적 모임에 참석하여 다음 두 가지 질문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구주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그분이 가르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배우도록 권유하셨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가르치는 이들이 자신의 배움에 책임을 지도록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가?

여기까지가 준비 과제였습니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분이 여기 오면서 이 중에 적어도 두 개를 하셨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배우는 경험을 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도록 권유할 수 있을까요? 패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네이트 피터슨: 길버트 장로님께서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존 형제님이 가르치신 것처럼, 학생들이 수업 준비로 경전을 읽고 제가 좋은 점수를 준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죠. 그렇지만 학생들이 매일 경전을 공부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걸음 물러나서 스스로 물어보는 겁니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위해 준비하라고 하는 것인가? 학생들에게 준비하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메러디스 장로님이 가르치신 것처럼, 우리는 멀리 내다봐야 합니다. 제자가 되는 것에는 단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건 단순히 제 수업에서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 읽으라는 게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영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 경전을 읽으라고 하는 겁니다. 수업이 진행되는 한 달이나 한 학기 동안 경전을 읽으면 좋은 일이겠죠. 그렇지만 수업 준비를 위한 것일지라도 매일 조금씩 읽으려고 노력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선택의지를 사용해서 읽도록 초대하는 기회가 됩니다. 물론 수업에서 읽으면 좋지만, 그것보다도 영원히 읽기를 바라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삶에 빛을 가져다주며, 영을 느끼는 방법이고, 수업이 다 끝난 후에도 도움이 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형제님께서는 준비하는 것을 평생 제자 됨과 연관 지어 주셨네요. 정말 훌륭합니다. 사실 주중의 수업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교사로서 학생의 삶에서, 배우기 전에 준비하는 패턴을 만들어주려고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것이 저희가 학생들에게 배우는 경험을 하러 오기 전에 준비하라고 권유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네이트 피터슨 형제: 그렇죠, 나중에 주일학교에서도 필요하고, 장로 정원회나 상호부조회에서도 필요합니다. 단순히 종교 수업을 위해서만 읽는 건 바라지 않습니다. 성찬식에 갈 준비가 되기를 바라고, 성전에 가기 위해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준비하는 패턴은 평생 제자 됨의 일부입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다른 분 있으신가요?

제넷 에릭슨 자매: 길버트 장로님, 네이트 형제님의 말씀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너무도 도와주시고 싶어 하신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은 실제로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려면 학생들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 이야기가 왜 그들에게 중요한지, 왜 여기 나오는 진리가 그들의 질문에 답변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변화하고 성장하며 치유하는 권능을 바라는 등의 마음속 가장 깊은 소망이 왜 이 과정에서 응답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저 자신에게와 학생들에게 그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그걸 연관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것은 그들이 단지 무언가를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분께서는 오늘 수업과 준비와 앞으로 할 행동을 통해서 실제로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진리를 쏟아부어 주시고, 돕고 치유하시며, 권능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겁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말씀을 듣다 보니 생각난 건데, 보통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 부분을 다룰 거니까 수업 전에 그 부분을 읽어오세요”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매님께서는 제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학생들이 그 부분이 자신에게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할 수 있다면, 더 영향력 있는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수업 전에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나 예습 자료의 선정 방식 자체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전에 과제를 주는 이유는 수업에서 하게 될 토론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학생들이 이해하길 바라서니까요.

존 형제님, 더 하실 말씀이 있나요?

존 힐턴 삼세 형제: 제 생각에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교사로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의 중요한 역할은 학생들이 학습하는 걸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경전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준비는 미리 경전을 읽는 것이겠죠.

몇 해 전 옥스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미나리 및 종교 교육원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경전과 친해지게 하여 매일 경전 공부의 결과를 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이 우리 마음 깊이 박혀 있다면, 준비하라고 하는 것이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하는 일의 핵심이 되겠죠. 제가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게 되고요. 그리고 두 분께서 하신 말씀에 조금 보태자면, 우리의 역할은 학생들이 수업에 오기 전에 경전에 깊이 빠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한 기술이 많이 있습니다. 간단한 예시로 다양한 경전 학습 방법을 배우도록 도와줄 수도 있고,

단순히 경전을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지난 학기에 제 수업에는 독해를 어려워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성경 관련 과목이었는데, 수업에서 저희는 교회 지침서에서 개인 학습을 할 때 성경의 다른 번역본을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언급되어 있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는 성경의 다른 번역본을 찾을 수 있는 웹사이트를 보여주었지요. 2주 후에 그 학생이 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힐턴 형제님, 6학년 독해 수준으로 번역된 성경 번역 버전을 찾았거든요. 공부하는 게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요.”

저희가 학생들이 개인 경전 공부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데 도움이 될 방법을 제안하면, 학생들은 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거라면, 학생들은 그냥 할 일 목록에서 체크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공부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훌륭합니다. 여러분 모두, 만일 학생이 수업에 오기 전에 무언가를 읽고 오면 수업에서 더 깊이 있는 경험을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시는 거죠.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존 힐턴 삼세 형제: 맞습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걱정되는 게 하나 있는데, 우리 학생들과는 사회적 계약 관계에 있는 거잖습니까. 우리가 학생들한테 준비해 오라고 하면, 본질적으로는 그 준비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 건데, 만일 준비한 것이 수업에서 활용되지 않으면, 사실 학생들한테는 수업에 올 때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닐까요? “강의 계획에는 써 놨지만, 준비하든 말든 별 상관없어”라고 하는 것과 같겠지요.

그럼 분위기가 흐려지겠지요.

방금 매일 준비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네이트 형제님, 만일 학생들이 준비한 것이 활용되지도 않고 그로 인해서 유익을 얻지 못한다면, 학생들이 준비하고자 하는 동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네이트 피터슨 형제: 그 점이 선택의지와 제자 됨이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권유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들, 예를 들어 질문을 던지거나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선교사로서나 교회에서 배울 때에도 학습을 하는 것에 관해 확인을 하지 않습니까. 수업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학생들이 반원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제자 됨을 연습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거죠.

저는 정말로 학생들이 경전을 읽어야 한다는 간증과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존 형제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경전을 읽으면 제 마음이 영을 느끼도록 준비되며, 경전에 나와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학생들도 그걸 깨닫도록 도와줘야 하죠. 그러면 말씀하신 대로 수업도 더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경전을 읽고 제자 됨을 실천하고 성약을 지키면 더 많은 영감을 얻는 수업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나누는 영감 덕분에 제 수업은 더 나아지겠지요. 그러니까 저는 학생들이 제자 됨을 연습하게 해서 수업에서 그 빛을 발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도 학생들이 경전을 읽으면 더 많은 걸 배운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준비를 수업에서 인정해 주고 활용할 수 있을까요?

제넷 자매님께서는 영원한 가족 과목을 가르치시지요? 그럼 수업 전에 학생에게 선언문의 한 부분을 읽거나, 아니면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의 말씀 “가족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를 읽어 오도록 한다면, 그런 준비가 어떻게 수업에서 활용됩니까?

제넷 에릭슨 자매: 지난해에 길버트 장로님이 추천해 주신 게 정말 효과가 좋았습니다. 바로 학생들이 수업에서 글을 쓰도록 하는 거였죠. 지난 학기에 저는 학생들에게 종이와 연필을 주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실제로 나누게 했어요. 이렇게 학생들이 자신이 경험한 것을 되돌아보거나, 경험한 것에 대해 간증을 쓰는 것처럼 무언가를 행하고,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을 되돌아보고, 그런 다음에 서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 아시다시피, 정말 멋진 일이 일어납니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간증을 나눌 때 성신이 그 간증의 내용과 그 진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증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들도 성신이 그들의 삶을 밝혀 주려 한다는 걸 압니다. 직접 경험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멋진 일이 일어납니다. 직접 경험을 하고, 수업에서 간증을 나누는 거죠.

소그룹으로 나눌 때나, 심지어는 발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적은 것에서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답을 듣곤 합니다. 주님의 영이 필요한 답을 준 것을 학생들이 느끼고, 그것을 다른 학생들에게 간증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학생들은 정말로 준비를 통해 수업에서 제자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BYU 학장님이 그분 수업에서 그렇게 하는 걸 봤습니다. 작년에 같이 팀 티칭을 하면서 그 방법을 배웠는데, 제 수업에서 그렇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케일리 자매님, 질문드리겠습니다. 다른 세 분에 비해 좀 불리하신데요.

케일리 메릴 자매: 그렇죠.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이분들은 종교 수업 성적을 매기지만, 세미나리에서는 성적을 매기진 않죠. 어떻게 하면 세미나리 학생들이 준비된 상태로 수업에 오고 싶어하게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성적을 받는 학생들도 성적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원하게 되기를 바라긴 합니다만,

학교 수업은 성적을 매기니까 이점이 있긴 합니다. 그러면 준비에 대한 어떤 보상을 줘야 할까요? 그리고 그토록 바쁜 세미나리 학생들이 아침 일찍 준비된 상태로 오게 하는 게 가능하긴 한가요?

케일리 메릴 자매: 제 생각에는 바꾸어야 할 게 많은 것 같습니다. 기꺼이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지난밤에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을 성취해 내려면 문화와 수업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장로님께서 언급하셨는데, 학생들이 자신이 준비한 것을 나누고, 가르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구체적이고 충분하며 정해진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매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수업에 올 때 자신이 맡은 책임이 있다는 걸 알고 수업에 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를 해 오지 않은 경우에 그 차이점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죠.

실천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바꾸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제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는 잘 준비된 학생들을 참여시킬 수 있으려면 잘 준비된 교사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러면 우리가 준비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만약에 교사가 수업이 있는 당일이나 하루 전에 준비한다면, 학생들이 준비하도록 해줄 충분한 시간은 없습니다. 훨씬 전부터 준비해서 바로 이전 수업이나 두세 개의 수업 전에 이미 학생들에게 해당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잘 준비된 교사가 잘 준비된 학생과 함께 한다는 그 개념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는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그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 같던데, 그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요? 정말 16살 된 세미나리 학생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일까요?

케일리 메릴 자매: 저는 우리가 학생들에게 더 높은 표준을 제시하면, 그에 따라 학생들이 따라올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능력이 그들에게 있고”에서 말씀하신 선교사 이야기처럼, 우리가 학생들을 높은 표준을 지니고 보지 않으면, 학생들은 그 표준에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주님께 신앙을 가지고 그분을 신뢰하며,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문화를 바꾸고 굳건하게 서고 꾸준하게 해낸다면, 학생들도 따라올 겁니다. 살아가면서 학생들은 굳게 서야 할 거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쉽지도 않을 거고, 하다가 실패도 하겠지만, 꾸준히 하기만 한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그러니까 높은 기대치를 갖는 것이 몇몇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군요. 그 사람들은 존 형제님의 수업도 거들떠보지 않고, “내 머리에 양털이나 올려놓겠지. 그냥 수업에 가서 앉아만 있다 오지 뭐” 그러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정말 실질적으로 어떻게 이걸 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적으로 보상이 주어지는 수업을 포함해서, 수업에서 학생들이 준비하도록 격려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보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존 힐턴 삼세 형제: 저는 케일리 자매님 말씀이 인상 깊었는데요, 수업에서 시간을 정해서 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었죠. 그러니까 제가 학생들에게 과제라는 명목으로 “배운 것에 대해 한 단락을 써 오세요.”라고 한다면, 수업 중에 학생 서너 명을 지목해서 배운 것을 발표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수업이 수동적일 수가 없게 됩니다. 저도 그에 따라 수업을 조정해야 하니까 유연해져야겠지요. 결국에는 저는 적게 말하고 학생들이 더 많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제넷 에릭슨 자매: 지난 밤에 한 훌륭한 교사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타주 루스벨트에서 가르치는 페이스 스펜서라는 분이셨는데, 세미나리에서 학생들과 매일 수업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셨죠. 그 자매님은 세미나리나 수업을 가르치기 이틀 전에 그 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칠지 알고, 학생 한두 명에게 부탁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준비하거나 생각해 오라는 권유는 반 전체에게 하고, 학생 한두 명에게 따로 연락해서 “네가 이것에 대해서 경험이 있거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혹시 내일 네가 준비한 걸 다른 학생들과 나눠줄 수 있겠니?”라고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학생들이 간증을 나누니까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더래요. 다른 학생들도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다른 학생들이 그 권능을 경험하는 걸 보고 자기도 참여하고 간증하고 경험을 나누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생기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세미나리 교사님들이 14살, 15살, 16살 된 학생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그렇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주시는 게 제게는 참 영감이 되는 일입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그게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수줍음이 많거나 참여하는 걸 어려워하는 학생도 있는데, 약간의 준비를 통해서 “누군가는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왔구나”라는 신호를 다른 학생들에게 줄 뿐만 아니라, 원래는 참여할 생각이 없었던 학생이나 주제에 익숙하지 않았던 학생까지도 대화에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게 되니까요.

그러면 이제 참여하고, 배운 것으로부터 가르치고,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에 관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다른 학생들로부터 배우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들 어떻게 하시나요?

존 힐턴 삼세 형제: 한 가지 정말 중요한 점은 학생들에게 발표하게 하는 이유를 알려 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교사로서 그냥 해야 할 일에 체크하듯이, 혼자 강의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으니까 “지금부터 30초간 옆에 앉은 사람이랑 이야기하세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계시가 여러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유익이 되는 각자의 경험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져 있다고 확실하게 설명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어떤 학생이 마음속에 질문을 품고 수업에 왔는데, 저에게는 그 학생에게 유익이 될 경험담이 없지만, 여러분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수업에 올 때, 교사가 나한테 무엇을 줄 것인지만을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수업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와 주세요. 그러면 질문이 있는 학생에게 필요한 경험담을 나누도록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이유를 알게 되면, 이게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수업 중에만 나누는 건 아니기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엔 지금 40명의 학생이 있는데, 각자가 아는 사람이 10명이라고 치면, 다 합쳐서 우리는 400명의 사람을 아는 겁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우리가 오늘 이야기한 것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집에 가면서, 아는 사람 중에 우리가 오늘 했던 경험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일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나누는 일이 교실 밖에서도 일어나게 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다른 분 있으신가요?

케일리 메릴 자매: 제가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찾은 것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Leading in the Savior’s Way[구주께서 보여주신 방법으로 이끎]에는 선택의지에 관한 섹션이 있거든요. 구주께서는 우리의 선택의지를 존중하십니다. 거기에 나오는 한 문장이 아주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더불어 사람들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확실한 기대치, 충분한 훈련, 시간,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기대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수업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 학생들에게 시간과 공간과 기회를 제공해서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 배운 점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공간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종종 그에 따라서 수업 조정을 할 수도 있겠네요. 또 질문을 하고 난 다음도 그게 적용이 됩니다. 수업에서 토론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질문을 하고, 답할 시간을 주지 않고, 그냥 교사가 답변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모든 학생이 “길버트 형제님이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난 아무 말도 안 해도 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교사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침묵이 이어지면, 한두 번은 그냥 지나가더라도, 결국에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게 정말 중요하고, 학생들은 해낼 수 있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게 있는데, 제가 BYU-아이다호에 있을 때, BYU-아이다호 학습 모델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스테이크 회장단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스테이크 상호부조회 회장님께서 와드 대회 때마다, 당시 세 번째 시간에 공과를 하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한 거랑은 아마 좀 다를 텐데”라고 생각했지요. 하여튼 자매님께서 하고 싶으신 대로 놔뒀습니다. 자매님께서는 이 BYU-아이다호 학생들에게 55분 동안 강의를 하려고 하셨던 거죠.

그런데 정말 멋진 일이 일어났지요. 질문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손을 들기 시작한 겁니다. 다들 BYU-아이다호 학생이었는데, BYU-아이다호 수업에서는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그냥 앉아서 55분 동안 강의를 듣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학생들은 계속 손을 들었지만, 자매님은 발표 기회를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이 학생들이 손을 들고는 그냥 말하기 시작한 겁니다. 자매님은 “여기 이 학교 학생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야”라고 느끼셨죠. 결국에 제가 자매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학생들은 참여하는 데 익숙해져서 그렇습니다. 공과가 좀 더 깊이 있게 진행되려면 학생들이 참여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준비하신 내용을 좀 줄이셔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시간을 주는 이 패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매님 말씀대로 공간과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말 선하고, 사려 깊고, 사랑 많은 교사조차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건 그냥 막 나가는 거 아닙니까? ‘모두들 서로 이야기하세요. 길버트 장로님이 짝을 지어주면 훌륭한 통찰을 나누어주세요.’라고 하면 학생들이 뭘 배우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네이트 형제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시작하면서 말씀드렸던, 제가 저자였던 사례 연구에 관한 이야기에서 제 전문성과 배경이 아무 상관 없는 건 아녔잖습니까. 학생들이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아서 걸림돌이 된 거였죠. 하지만 그런 전문성과 지식은 깊이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 중요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냥 학생들에게 “다들 짝지어서 토론하자. 오늘 할 일은 그거야.”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제 지식을 통해서 더 깊이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참여자들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 정신없고 체계가 없는 수업이 되지 않게, 중구난방이 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네이트 피터슨 형제: 길버트 장로님, 아까 말씀하신 대로 종종 “강의만 하는 건 피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반대 방향의 극으로 가는 바람에 땅콩이나 챙겨 와서 땅바닥에 쏟아놓고 원숭이들이 다 난리를 치게 되는 것처럼 되기도 하지요. 만일 학생들에게 그냥 서로 이야기하라고 해 놓으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인스타에 뭐가 있는지, 요새 재밌는 게 뭔지 이야기하는 건 정말 쉬우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제자 됨에 집중하려 한다면 토론을 하도록 이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중심을 잡을 닻이 있고, 선택의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케일리 자매님이 말씀하셨듯이, 수업을 계획하면서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목적이 있는 계획을 하려면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그냥 말만 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경전이나 진리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계획이 있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Strengthening Religious Eduation[종교 교육을 강화함]”에 따르면 우리는 학생들이 더 깊이 알고, 더 깊이 느끼고, 더 나은 행동을 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케일리 자매님 말씀처럼 교사가 계획을 잘해야 하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닻이 되는 세 개의 질문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는 건 아닙니다. 먼저 문제를 제시하고, 소개하고, 그리고 그게 우리에게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야기해야 하겠죠. 예를 들면, 넬슨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모두 죽고, 심판을 받고, 부활할 것이라는 부분을 살펴본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내용의 구성을 잘 잡고, 경전을 살펴보는 겁니다. 그런 식의 절차인 거죠. 그런 다음에 질문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고 하는데, 그럼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될까요?” 그러고 나서 경전에서 답을 찾습니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

머리로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 가슴으로도 무언가를 느끼겠죠. 그러고 나서 학생들이 무언가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그들 손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그러면 핵심 질문이 나오죠. 문제가 무엇인가? 바로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서 계획을 할 때는 할 질문들을 미리 생각해 보고 자료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팔꿈치에 대해 배우든, 피아노나 농구를 배우든, 교사가 단순히 피아노 연습만 시키거나 학생이 자유투 던지는 걸 구경만 하라고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여기 BYU-아이다호에서 우리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키우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수업에서 그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옮기며 교실 밖에서도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형제님께서 단순히 떠들거나 수다 떨고 이야기만 하는 건 깊이 있는 배움과 같지 않다고 하신 게 인상 깊었습니다.

다른 것도 한두 가지 말씀해 주셨는데요. 우리가 하는 질문이 알맞은 질문 또는 깊이를 더하는 질문인지, 그리고 미리 시간을 들여 연습해서 그 질문에 대해 몇 단계 더 깊이 논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제 제기도 말씀하셨고, 특정한 문제에 대해 수업을 구성하는 방법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수업을 더 깊이 있게 해 줄 것 같습니다.

수업의 구성이나 더 깊이 있는 배움에 관해 말씀해 주실 분 있나요? 단순히 참여만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선택의지를 행사하여 더 깊게 들어가는 것에 관해서 말입니다.

케일리 메릴 자매: 장로님이 말해 주신 것 중에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좀 어려웠던 것이 바로 이 교수법이 딱히 더 효율적이지는 않을 것이며, 수업에서 빼버려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교사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는 겁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앞에서 말을 하면서 시간을 쓰고 싶어 하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좀 더 위대한 것을 위해서, 즉, 더 깊이 있는 배움을 위해 희생을 해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효율 면에서는 좀 떨어지더라도 확실히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관념을 바꿀 수 있다면 그런 희생을 더 쉽게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그러니까 수업에서 내용을 좀 덜 가르치게 될 수는 있겠지만, 좀 더 깊이 있게 하겠다는 말씀이신 거죠. 좀 정신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교사로서 더 깊이 있게 가르치기 위해서요.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게 있는데, 저희가 BYU-아이다호에서 온라인 수업을 개발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볼링브룩 형제님은 아니었고, 누구였는지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버트 총장님, 그냥 제가 말하는 걸 녹화하고, 제 강의를 녹화해서 온라인에 올리고 학생들이 시청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 그런 방식으로 하려는 건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만일 우리가 모두 일방적으로 말하고 그걸 녹화해서 시청하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 교수님 말대로 해도 됐을 겁니다. 제 강의를 녹화해서 올리면 학생들은 수업에 올 필요도 없습니다. 또 수업을 귀로 듣는 것 외에는 달리 해야 할 일도 없겠지요. 그리고 모두 수업 준비 자료로 올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학생들이 수업에서 그냥 수다만 떠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제넷 에릭슨 자매: 방금 말씀하시는 동안 교리와 성약에 나오는 귀중한 문구인 “모두가 함께 교화”된다는 강력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 지침은 어떤 면에서는 교실 안에 있는 모두가 교사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명확하게 해주신 것처럼, 매일의 수업에서 우리가 가르치려는 근본적인 진리가 있다는 걸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깊이 있게 이해하길 바라는 진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영감이 두루두루 주어져 있을 것이며, 우리는 모두 함께 그 진리를 공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업의 기초가 되는 그 진리를 통해 우리가 함께 교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학생들이 어떤 주제에 대한 계시를 받고 그걸 나누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준비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함께 교화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혼자라면 할 수 없었던 일이었겠지요. 저 혼자서는 학생들이 정말 알아야 할 진리를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강력한 개념에 대한 진리는 우리 모두에게 두루두루 퍼져 있는 거니까요.

즉 어떤 원리에 관한 진리에 닻을 내린 상태로 영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을 끌어와서 활용하게 되는 겁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좋은 말씀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께서 계속해서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해 보시고, 여러분 학과 모임이든 현임 훈련 모임이든 함께 이야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참여자 중심의 배움이 깊이 있는 배움이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수업을 구성하면 학생들이 참여면서도 동시에 더 깊이 있게 배우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질문의 예시와, 깊이를 더해주는 질문, 수업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의 예시를 들으셨습니다. 비유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유에서는 이야기를 살펴보고 그게 진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모임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실제로 해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여러분은 모두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물론 여러분께서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하면서 깊이 있게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가볍고 빠른 대답을 유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수업에서 첫 번째 답변을 넘어서 더 깊이 들어감으로써 깊이 있는 배움이 일어나게 할 방법을 찾아보도록 권유합니다. 존 형제님, 아까 메릴 자매님께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런 일이 일어날 기회를 조성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런 기회를 조성하는 방법 중 하나가 학생들이 자신만의 질문을 해 보라는 것이라고 하셨고요.

그것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존 힐턴 삼세 형제: 네, 지금까지는 질문을 준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고, 중요한 부분이죠.

미숙한 교사였던 수년 전에, 저는 순결의 법에 대해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지요. 순결의 법의 중요성과 그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가르쳤죠. 끝날 때 쯤 질문을 받았는데, 한 학생이 질문했습니다. “형제님, 순결의 법을 어긴 사람은 어떡하나요? 그런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나요?”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경험 없는 교사였던 저는 그 질문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저희가 그날 이야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란 걸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학생의 질문을 위한 기회와 공간을 만들었기에 깊이 있는 배움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좀 더 경험 있는 교사가 되었지만, 저는 아직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 예상합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교사라 해도, 학생들의 미묘한 분위기나 다양한 경험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멈추고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그들의 상황은 어떤지?

존 힐턴 삼세 형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그들에게 어떤 질문이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말이죠.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그럼 수업에서는 그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그렇게 하실 때에 정해진 형식이 있나요? 아니면 그때그때 이루어지거나 정기적으로 반복되나요?

존 힐턴 삼세 형제: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가끔 재밌는 방법으로 하려면 구글닥을 열어서 큐알 코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익명으로 질문을 적으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보통은 잠시 멈춰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적을 기회를 주는 단순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만일 제가 “어떤 질문이 있나요?”라고 물어놓고 5초 후에 “질문이 없으면 넘어갑시다”라고 한다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만일 “30초를 줄 테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 어떤 것에 관해 이야기했나요? 경전에 대한 질문이나 삶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있나요?” 그리고 어떤 때는 제가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게 아니라, 옆에 앉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서로 답변하게 합니다.

더 깊이 있게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정말 강력한 방법이네요. 그럼 이제 마지막 주제를 다룬 다음에, 권유와 확인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울 준비가 된 상태로 수업에 와서 배운 것을 나눌 기회를 갖는 것은 배움에 대한 책임을 질 기회입니다.

『구주께서 보여 주신 방법으로 가르침』에서 여러분께 읽으라고 한 부분에서 다루는 세 번째 방법은 학생들이 교실을 떠날 때 배운 것을 적용할 기회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그걸 실천하십니까?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고 토론한 것을 교실을 나가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무엇을 하시나요?

케일리 메릴 자매: 약간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제가 고민하고 실제로 해봤던 거랑 비슷한 방법인데, 내년에도 시도해 볼 방식입니다.

저희가 준비에 관해서 많이 이야기했고, 미리 경전 블록을 읽는 것에 대해 많이 언급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적용하는 것이 준비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2주 후에 금식에 관한 수업을 할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수업이 있기 한두 주 전에 수업에서 한 5분만 빼서 학생들과 함께 그들 마음을 속상하게 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다음 주 중에 하루를 잡고 그것에 대해 금식을 하도록 권유하는 겁니다.

그러면 금식에 관해 가르치는 수업에서는 벌써 학생들이 그와 관련된 경험을 한 상태겠지요. 그러면 학생들이 수업에서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후에도 다시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게 되겠죠. 왜냐하면, 직접 경험을 통해서 겪었고, 수업에서 경험을 나누었으니까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간증은 나눌 때 생긴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학생들이 이후에 삶에 적용할 가능성이 높아지죠.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저도 적용하는 것 역시 준비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일리 메릴 자매: 물론 그런 방법이 모든 원리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많은 방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다른 의견은 없으신가요?

존 힐턴 삼세 형제: 또 한 가지 생각은, 아까 네이트 형제님이 언급하셨던 것 같이, 후속 확인을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교사의 시간을 더 줄여야 하긴 합니다.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지난 수업에서 여러분에게 권유를 했었는데, 어떤 것을 실행했나요?”하고 물어볼 수 있는 겁니다.

권유는 항상 하면서 한 번도 후속 확인을 안 한다면, 그건 아까 말씀하신 것 같이, 질문을 해 놓고 답도 같이 해 버려서 학생들이 “답하는 건 안 해도 되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랑 같은 상황이 돼버리죠. 그렇지만 수업 시작할 때마다 “우리 금식에 대해 얘기했었죠” 아니면 “이 원리에 대해 이야기했었죠”라고 하면서 후속 확인을 하면, 학생들은 그게 중요하단 걸 이해하기 시작할 겁니다.

네이트 피터슨 형제: 제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게 있는데요. 이게 모두에게 드리는 권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숙제를 드려도 되는 건가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물론이죠.

네이트 피터슨 형제: 지금까지 권유하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해 왔지요. 어제 일어난 일입니다.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주체가 된다는 말을 여러 번 사용하셨습니다. 한 네다섯 번 정도 언급하신 것 같습니다. 장로님도 그 단어를 사용하셨고요.

그래서 저는 돌아가서 이 단어를 공부했습니다. “부지런히 배우도록 권유한다”에서도 책임지는 것에 관해, 그러니까 주체가 되는 것에 관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께 제안을 하자면, 제자 됨과 주체가 되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길버트 장로님께서 마지막에 왜 이 표현이 자꾸 나오는지에 관해 몇 말씀해 주셔도 좋고요. 그러니까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아니면 청지기 직분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것이니까요. 선택의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인데, 제자가 된다는 건 그 은사를 가지고 할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하잖아요. 차주가 되고 싶고 집을 소유한 주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이 주인이 된다는 말이 제자가 된다는 말이랑 자꾸 같이 나오더라고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그리고 선지자께서도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지요.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영원을 위한 선택”에서 인용하신 것이었는데, 넬슨 회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간증을 돌보시라고 간청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시고 주인이 되십시오. 간증이 자랄 수 있도록 양육하십시오.” 형제님 말씀이 맞습니다. 선지자께서는 우리와 모든 청년 성인에게 간증의 주인이 되라고 간청하셨습니다.

네이트 피터슨 형제: 제가 한 마디 덧붙여도 될까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물론이죠.

네이트 피터슨 형제: 그게 우리가 수업 후에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지 않나요? 학생들은 수업에 오고, 제자 됨을 연습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들이 그 주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전 추천서 접견에 같이 있어 줄 수도 없고, 유혹을 받을 때나 시험 받을 때 같이 있어줄 수도 없으니까요.

이 관계는 저도 이해하려고 하는 중이고 더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만, 학생들이 진리와 제자 됨의 주인이 되고, 선택의지의 주인이 되며, 학생들이 진리의 주인이 된 후에 교실을 떠나게 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형제님께서 우리가 그 모든 삶의 선택의 기로에 학생들과 함께해 줄 수 없다는 걸 들으니까 미소가 지어지네요. 청소년 시절에 보스턴 도심에 살던 청소년들이 “뭔가 나쁜 일을 할 때마다 가상의 클라크가 내 어깨에 앉아서 ‘그러면 안 돼’ 하고 말하는 게 보여”라고 농담을 하던 게 기억납니다.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 있어서 교수님이나 청남 지도자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겠죠.

그리고 이제는 저희가 계획에 없었던 걸 하려고 합니다. 존 형제님께서 질문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 좋다고 하셨지요. 여러분 중에는 이런 분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매 수업마다 준비 과제를 내줘야 한다고? 학생들도 참여하도록 해야 하고, 질문도 하고, 수업에서 깊이 있는 배움이 일어나게도 해야 하는데, 적용도 해야 한단 말이야?” 여러분 중에는 또 이런 분들도 계실 겁니다. “길버트 장로님, 저 이번 주 수요일에 가르치고, 다음 주에도 가르치고 그다음 주에도 가르치는데요. 이걸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리고 많은 분이 패널에게 질문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몇 분 정도 시간을 들여, 제가 토론에 포함시키지 못했지만 토론을 진행하는 중에 생각났던 질문이 있으신 분은 일어서서 질문을 해 주십시오.

네, 제가 저 뒤쪽까지는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자매 12(페이스 스펜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페이스 스펜서입니다. 패널로서 무언가를 나눌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다르게 준비하는지가 궁금합니다.

케일리 메릴 자매: 시간을 많이 들여서 준비했지요.

길버트 장로님께서 “능력이 그들에게 있고” 말씀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발표를 하게 될 거란 걸 학생들이 알고 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됩니다.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해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무언가를 나누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나누기 위해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그게 제 학생들도 하기를 바라는 경험이란 걸 알게 됐어요. 학생들도 수업에 가면 그냥 앉아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나눠야 할 시간이 있을 거고, 그 시간에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감사합니다. 또 다른 질문이 있나요?

제넷 에릭슨 자매: 질문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데요. 주님께서 제가 효과적인 교사가 되고 학생들의 선택의지를 더 잘 활성화할 수 있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하면 느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동료 중에는 학기 초반에 수업을 가르치기 전에 30분 정도 시간을 들여서 학생들의 필요 사항에 대해 영의 인도에 귀를 기울이고, 그 수업에 대한 목표를 정하고 통찰을 얻으려고 노력한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패널로서 준비하면서 저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저를 사랑하시고, 제가 좀 더 효과적인 교사가 되는 데 도움을 주시기 바라시고, 학생들을 축복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이 모임을 위해 생각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결국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지요. 저는 제 학생들도 그런 강력한 경험을 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가진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도록 축복하시는 것이 이 수업의 중심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여기서 그분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이지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감사합니다. 또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자매 13: 마이크가 켜져 있나요? 죄송합니다. 저는 특수 학생 세미나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거의 모두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제가 배운 것을 어떻게 그 학생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지금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자매 13: 많은 경우에 그림을 인쇄해서 코팅한 다음에 학생들에게 수업에 대한 다양한 것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구 익히기 같은 경우는 코팅한 긴 종이를 사용해서 성구 익히기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교실에서는 수화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경험이지요.

존 힐턴 삼세 형제: 제가 한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특수 학생 세미나리에 대한 경험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이 패널에 초청받기 전에 가을 학기의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가 하던 수업 준비의 99퍼센트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였습니다. 내용에만 초점을 맞췄던 거죠. 그렇지만 여기에 패널로 참여하게 되면서 제가 자신에게 하는 질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 전에 준비하게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행동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며 보냅니다. 그 질문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져가면서 저는 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특수 학생 세미나리에 대한 특정한 답을 제가 해드릴 수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답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런 쉽지 않은 질문들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져가면, 저는 우리 학생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개인적인 응답을 받으리라는 간증이 있습니다.

제넷 에릭슨 자매: 우리 모두는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흔히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일까?”라고 자문하지만, 점차 “학습자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음악이 어떻게 영을 불러올까?” “특정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어떻게 영을 불러올 수 있을까?”라고 묻게 되는 것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학습자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수업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변화하기를 저도 바랍니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클라크 지 길버트 장로: 말씀하실 것이 있나요? 아, 다른 분이 있다고요. 아, 이제 마무리하지 않으면 제 마이크를 꺼버리겠다고 하는 거였군요.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임을 위해 여러분께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시도록 요청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이들이 자신의 배움에 책임을 지도록 더 효과적으로 도울 방법은 무엇일까?”

저는 아까 드렸던 권유를 다시 드리고자 합니다. 잠시 시간을 들여 오늘 이 모임에서 개인적으로 얻은 느낌을 기록해 주십시오. 그럼 여기서 잠시 조용히 있도록 하겠습니다. 몇 분 정도 시간이 있는 것 같으니, 1분만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배우신 것 한 가지를 적어주십시오. 그 배운 것이 저희가 한 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늘 배운 것 중에서 여러분이 더 나은 교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될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마무리하기 전에 잠시만 시간을 내서 기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다 못 적으셨다면, 계속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여러분이 적은 것으로 다음 두 가지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받은 영감에 따라 여러분의 가르침을 향상시킬 목표를 세우십시오.

마무리하기 위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패널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분들은 아주 훌륭한 교사들입니다. 저는 이분들로부터 많이 배웠고, 함께 이 모임을 준비하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여러분 모두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제 크리스토퍼슨 장로님께서 하신 말이 정말 와닿습니다. 여러분은 이 교회의 미래를 위한 최전선에 서 계십니다.

마무리하기 위해 제 간증을 전하겠습니다. 교회 교육 기구는 교회의 모든 젊은이가 성장하고 평생 제자가 되도록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가장 의미 있게 일어나는 곳은 그 어느 곳도 아닌 교회 교육 기구의 세미나리 수업, 캠퍼스 기반 종교 교육원, 일반 종교 교육원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평생 제자가 될 수 있게 책임을 지도록 돕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이 일에 관련된 모든 것에 교회가 투자를 많이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회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이십니까?” 여러분께서도 그걸 느끼시길 바랍니다. 교회 전체의 세미나리 등록자 숫자와 등록률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이 시기에도 대학 등록률 역시 계속해서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종교 교육원은 교회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교실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배움에 책임을 지도록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넬슨 회장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우리는 구주의 재림을 위해 세상을 준비할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권능과 힘을 지니고 우리가 맡은 바를 하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실 때, 진지함과 겸손,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의 청지기 직분을 수행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