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인 보화
창세기 심층 탐구
여러분의 “장자의 명분”과 바꿀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야곱과 에서, 그리고 “죽”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창세기 25장 29~34절에 따르면, 고된 하루를 보낸 후, 배가 고픈 채로 집으로 돌아온 에서는 “죽”을 만들고 있던 동생 야곱에게 죽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과 죽을 맞바꾸자고 했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에서가 이삭의 맏아들로서 받은 특별한 상속, 책임, 권세를 뜻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에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아, 나 지금 정말 배가 고프거든. 배고파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들은 그 거래를 성사했습니다. 그 행동을 통해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자신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자세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모세서 1:23, 41; 신앙개조 제8조 참조) 야곱이 형과 음식을 나누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죽 한 그릇과 바꿔서는 안 됐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어떤 것과도 바꿔서는 안 됐습니다.
여러분은 “장자의 명분”을 “고결함”이나 “명예”처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단 몇 분의 만족이나 충족을 위해 여러분의 고결함이나 명예를 버리겠습니까?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영원을 포기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유산을 죽과 맞바꾼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지요. 하지만 사실은, 영원한 행복을 그 어떤 것과도 맞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시고 우리가 충실하다면, 그분은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7:4) 문제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에게는 자녀가 없었고 이제는 두 사람 다 많이 늙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이제 아기를 갖게 될 것이란 말에는 기뻤지만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창세기 17:17)
사라는 물론 이삭을 자녀로 갖게 되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이스라엘로도 알려졌으며, 열두지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종종 우리 필멸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충실하다면 그분께서는 항상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어떻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분께 맡기십시오.
이삭은 어떻게 구주를 상징했는가?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 그것은 오랜 세월 후에 임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했습니다.(야곱서 4:5 참조) 다음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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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 땅”(창세기 22:2)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셨는데, 그곳은 후에 예루살렘이 세워지고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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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 번제에 쓸 나무를 날랐고(창세기 22:6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매달리시게 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요한복음 19: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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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희생양이 어디 있냐고 묻자,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세기 22:8) 당시 하나님께서는 이삭 대신 제물로 바칠 숫양을 주셨습니다.(창세기 22:13 참조) 그리고 후에는 여호와께서 친히 지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우리를 위해 희생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