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와 메리 휘트머의 농장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초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이다. 조셉과 에머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는 몰몬경 번역을 마칠 당시 휘트머 가족의 손님으로 이곳에 살고 있었다. 세 증인이 모로나이 천사의 방문을 받고 금판을 본 곳도 휘트머 농장이었다. 이곳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계시가 주어졌고 1830년 4월 6일에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다.
1828년 어느 날, 데이비드가 사업차 팔마이라에 갔을 때, 올리버 카우드리는 데이비드 휘트머를 만났다. 두 사람은 조셉 스미스의 계시와 관련된 소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올리버가 하모니에서 번역을 돕는 동안 그들은 서로 연락을 유지했다. 번역을 마치려면 조셉과 올리버에게 하모니보다 더 은밀한 장소가 필요함이 분명해지자, 올리버는 친구인 데이비드에게 도움을 청했다. 1829년 5월, 데이비드는 하모니로 가서 선지자와 그의 아내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다음 달, 데이비드는 마차를 타고 펜실베이니아로 가서 조셉과 에머, 올리버를 데려와 자신의 가족과 함께 지내게 했다.
휘트머 가족은 조셉 스미스가 선지자로서의 부름을 완수하기 위해 일하던 중대한 시기에 그를 지원했다. 피터와 메리 휘트머 가족은 그들의 농장에서 선지자와 함께 지내는 동안 자신들의 집과 생활을 선지자와 공유했다. 휘트머 가족 중 일부는 몰몬경이 번역되는 동안 서기로 봉사했다. 데이비드 휘트머는 농장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몰몬경 판을 보여 준 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메리 휘트머 역시 모로나이 천사의 개인적인 방문을 통해 판을 보았고 이로써 몰몬경의 증인이 되었다.
1829년 6월, 피터와 메리 휘트머는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를 자신들의 집에 받아들였다. 조셉이 몰몬경 번역을 마친 후, 올리버 카우드리와 데이비드 휘트머, 마틴 해리스는 휘트머의 집 근처 한적한 장소에서 몰몬경 판을 보았다. 후에 세 사람은 몰몬경이 참됨을 확인하는 성명서를 작성했으며, 이 성명서는
세 증인의 증언으로서 몰몬경의 모든 판본에 수록되어 있다. 나중에, 선지자가 뉴욕주 팔마이라 근처에서
여덟 명의 추가적인 증인에게 금판을 보여 준 이후로, 이들도 금판의 실재성을 증언했다. 이 여덟 명의 추가적인 증인 중 네 명이 휘트머 가족이었다.
1830년 4월 6일 휘트머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다. 콜스빌, 맨체스터, 페이에트에서 온 약 55명의 사람들이 조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를 교회의 지도자로 지지했다. 그 후에 조셉과 올리버는 주님의 만찬인 성찬을 축복하고 회중에게 전달했으며, 이전에 침례를 받았던 몇몇 사람을 새로 조직된 교회의 회원으로 확인했다. 같은 날, 조셉은 그곳에 모인 회중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를 나누었고(
교리와 성약 21편),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인근 세네카 호수에서 침례를 받았다. 후에 1830년부터 1831년까지 휘트머의 집은 첫 번째 대회를 포함하여 여러 중요한 모임에 사용되었다.
휘트머 가족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중부 유럽에서 펜실베이니아주로 이주해 온 대규모 독일어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1800년대 초에 뉴욕주 페이에트로 이주하여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일원이 되었다. 1830년 12월, 휘트머의 집에서 교회가 “오하이오로 [가야]” 한다는 계시가 주어졌다.(
교리와 성약 37편) 이듬해 4월, 휘트머 가족은 농장을 팔고 나머지 성도들과 함께 오하이오주 커틀랜드로 이주했다.
『성도들』 제1권 제8장에서 휘트머 농장에서 회복된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조직된 일에 관해 더 읽어 본다.
사전 정보
피터와 메리 휘트머의 집은 휘트머 농장에서 선교사들이 제공하는 가이드 투어의 일부이다. 투어는 방문자 센터에서 시작하며, 방문자들은 이곳을 소개하는 영화와 체험형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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